대사헌·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계유정난 때 희생됨, 호 정암
| 생몰 | 1453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광주 안씨 |
안완경(安完慶, ?~1453)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정암(貞菴)입니다. 안사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정, 아버지는 관찰사 안처선이며, 어머니는 구홍의 딸입니다.
1423년(세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사재감 직장, 사헌부 헌납, 병조좌랑, 종부시 소윤 등을 지냈고, 1436년 집현전 직제학으로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이후 우사간대부·병조참의·좌부승지를 거쳐 1450년에는 형조참판으로 사은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문종이 즉위한 1450년 대사헌에 올라 1452년 주문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453년(단종 1)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그해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안평대군의 일파로 몰려 양산에 유배되었다가 곧 사사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적습니다. 위키백과는 수양대군에 의해 순절했다고 하며 단종의 충신으로 영월 정충단에 부식되었다고 전합니다.
안완경은 세종 대에 두 차례 과거에 급제하고 집현전 직제학까지 올랐으니 학문과 문장으로 인정받은 관료였습니다. 집현전은 세종이 학자를 길러 정책 연구를 맡긴 기구로, 직제학은 그 가운데 중간 이상의 직위입니다. 1450년 사은부사와 1452년 주문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는 이력은 외교 실무에서도 신임을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대사헌은 사헌부의 수장으로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직책입니다. 광주 안씨가 대대로 대간 관서에서 이름을 얻은 것과 흐름이 같습니다.
1453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한 계유정난 때 안평대군과 가까웠던 인물들이 숙청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안완경이 안평대군의 일파로 몰려 양산에 유배되었다가 곧 사사되었다고 쓰고, 위키백과의 광주 안씨 항목은 충청감사 재임 중 수양대군에 의해 순절했고 영월 정충단에 부식되었다고 적습니다. 죽음의 경위를 두 자료가 다르게 표현하므로 여기서는 병기합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453년(단종 1)입니다. 출생 연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