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참의를 지낸 청백리 가풍의 문신, 임진왜란 때 아들과 함께 순국
| 생몰 | 159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광주 안씨 |
안사웅(安士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위백(偉伯)입니다. 현감 안극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참판 안윤손, 아버지는 안자흠이며, 어머니는 신순승의 딸입니다.
1522년(중종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 왕의 즉위를 경축하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장령·집의를 거쳐 병조참의에 이르렀습니다.
친형제가 일찍 죽자 그 자녀들을 함께 키우며 형제의 자녀들을 먼저 혼인시킨 뒤에야 자기 자녀를 혼인시켜 칭찬을 받았습니다. 청백리 안성의 후손으로서 가풍을 유지해 집안이 가난했고, 승지로 있을 때 왕십리에서 출근하느라 지각이 잦자 왕이 낙산에 집 한 채를 하사했다고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아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조선 사회에서 혼사는 집안의 큰일이었고, 자신의 자녀보다 조카를 먼저 챙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안사웅이 일찍 죽은 친형제의 자녀를 함께 키우고 조카들의 혼인을 먼저 치른 뒤에야 자기 자녀를 혼인시켜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집안의 의리를 지킨 사람으로 기억된 이유입니다.
청백리 가문답게 그는 재산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승지로 있을 때 멀리 왕십리에서 출근하다 지각이 잦았고, 이를 안 임금이 낙산에 집 한 채를 내려 주었다고 전합니다. 어느 임금이었는지는 항목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는 증조부 안극변과 할아버지 안윤손으로 이어지는 대간 가문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아들과 함께 죽었다고 하며, 구체적인 장소와 경위는 항목에 적혀 있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전란 속에서 일가인 안황은 왕을 호종했고 안민학은 의병을 모았습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청백리 안성의 후손으로서 가풍을 지킨 병조참의로, 조카를 먼저 혼인시킨 일화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