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덕 安潤德

삼포왜란을 평정한 형조판서·공조판서, 시호 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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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조선 전기
본관광주 안씨

생애 약력

안윤덕(安潤德)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선경(善卿), 시호는 익헌(翼憲)입니다. 참판 안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종생, 아버지는 안동판관 안팽로이며, 어머니는 복천군 권개의 딸입니다. 생몰년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3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부정자가 되었습니다. 성균관 학유·박사, 종부시 주부, 정언·지평, 병조좌랑을 거쳐 1497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며 사인·지제교 겸 사관이 되었고, 1498년 사간, 직제학을 지나 1500년 동부승지,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습니다.

1503년 예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지만 그해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김제에 유배되었습니다. 1507년 중종 때 복직해 형조참판·병조참판·한성부좌윤을 지냈고,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도순찰사 겸 부원수가 되어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한성부윤과 형조판서를 거쳐 1515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가 단군과 기자의 사당을 수축했고, 1521년 공조판서로 복직해 원접사를 맡았으며 1526년 기로소에 들고 1527년 좌참찬에 이르렀습니다.

삼포왜란의 평정

삼포왜란은 1510년(중종 5) 부산포·제포·염포의 삼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조선의 통제 강화에 반발해 일으킨 난입니다. 안윤덕은 이때 지중추부사에 오르면서 경상도 도순찰사 겸 부원수가 되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적습니다. 이 난 이후 조선과 일본의 교역은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갑자사화와 복권

갑자사화는 1504년 연산군이 생모 폐비 윤씨의 일로 많은 신하를 처벌한 사건입니다. 안윤덕은 1503년 예조참판으로 명나라 사행을 다녀온 그해 이 일에 연루되어 김제로 유배되었다고 전합니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 1507년에 형조참판으로 등용되어 복권되었습니다.

평안도관찰사와 말년

1515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가 단군과 기자의 사당을 수축해 선조를 숭배하는 정신(경조정신)과 유풍을 크게 떨치게 했다고 합니다. 1526년 기로소에 들고 1527년 좌참찬에 올랐습니다. 증손자뻘인 안황은 그의 후손으로 기록됩니다.

묘소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윤덕 자주 묻는 질문

삼포왜란은 언제 일어났나요?

1510년(중종 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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