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손 安潤孫

대사간·대사헌을 지낸 청백리, 형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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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50 ~ 1520
시대조선 전기
본관광주 안씨

생애 약력

안윤손(安潤孫, 1450~152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홍조(弘祖)입니다. 참찬 안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섬시령 안철산, 아버지는 현감 안극변이며, 어머니는 사성 김최의 딸입니다. 안철산은 사간공파 서령공파의 파조여서 그 계통입니다.

1474년(성종 5) 생원시·진사시에 잇달아 합격하고 1476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예문관 검열과 기사관을 거치며 한명회가 남효온 등 재야 사림을 탄핵하려 하자 이를 변호했고, 전경으로서 수렵의 폐단과 언로를 넓힐 것을 주장했으며, 1482년에는 경연에서 내수사 장리의 혁파를 건의했습니다.

홍문관 부교리, 지평, 장령을 거치며 안주판관 이빈의 비행을 고발하고 충청도관찰사 이공이 무능하다고 탄핵하는 등 기강 확립에 힘썼습니다. 1494년 회령통판으로 선정을 베풀어 칭송받았고, 1499년 전라도 수군절도사에 올랐으나 왜구를 막지 못했다고 파직되었다가 복직해 1502년 대사간을 지냈습니다. 이듬해 형조참의가 되었고 청백리로 이름났으며, 중종반정 이후 한성부우윤, 1507년 대사헌, 함경북도절도사, 한성부좌윤을 거쳐 1512년 형조참판이 되었으나 아들 안자문의 부정행위로 파직되었습니다.

성종 대의 직언

한명회는 세조 대의 공신으로 권세가 컸고, 남효온은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사육신을 기린 재야 선비였습니다. 안윤손이 한명회가 이런 재야 사림을 비방 탄핵하려는 것을 변호했다는 기록은 그가 권력자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경연에서 내수사 장리(왕실 재산의 고리대) 혁파를 건의한 일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방 근무와 파직, 복직

그는 1494년 회령통판, 1499년 전라도 수군절도사, 중종 대에는 함경북도절도사를 지내 중앙과 지방을 오갔습니다. 수군절도사 때 왜구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된 것, 말년에 아들의 부정행위 때문에 파직된 것은 청백리로 불렸던 그의 경력에서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가계에 대한 두 가지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안윤손을 안성의 증손으로 쓰고 위키백과의 광주 안씨 항목은 손자로 적습니다. 대백과의 계보(안성→안철산→안극변→안윤손)를 따르면 증손이 되므로 여기서는 증손으로 정리합니다. 손자 안사웅 역시 청백리의 가풍을 이었습니다.

묘소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손자 안사웅이 문과에 급제해 청백리의 가풍을 이었습니다.

안윤손 자주 묻는 질문

안윤손은 안성의 손자인가요, 증손인가요?

자료가 갈립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증손, 위키백과는 손자로 적습니다. 이 글은 대백과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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