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강원도감사를 지낸 문신, 호 구포
| 생몰 | 1600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광주 안씨 |
안헌징(安獻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성관(聖觀), 호는 구포(鷗浦)입니다. 1600년(경자)에 태어났다고 정리되며 사망 연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목사 안여경(安汝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성공신 안황, 아버지는 참판 안응형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이산해의 딸입니다.
어릴 때부터 문사에 뛰어나 1621년(광해군 13)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검열·이조좌랑 등을 거쳐 1626년(인조 4)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조정랑·장령 등을 지냈습니다. 1641년 월과제술에서 세 차례 연달아 수석을 차지해 왕으로부터 숙마 한 필을 받고 품계가 올라 우부승지가 되었습니다.
1646년 좌부승지, 1652년(효종 3) 승지를 지냈고 이듬해 참찬관, 1654년에는 강원도감사가 되었습니다. 글재주가 있어 문장에는 뛰어났으나 조정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감사 재임 중에는 직책을 다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시문은 『구포집』에 전합니다.
안헌징은 호성공신 안황의 손자로 외가는 영의정 이산해의 집안이었습니다. 이처럼 호성공신 집안과 정승 집안의 후손이면서도 과거로 두 번 급제해 스스로 길을 열었습니다. 1621년 정시와 1626년 중시의 두 번의 급제는 문사에 뛰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월과제술은 관리들에게 매달 시문을 짓게 한 시험으로, 1641년 그가 세 차례 연달아 수석을 한 것은 문재가 뛰어났음을 증명합니다. 반면 조정에서의 평가와 감사 재임의 성과는 높지 않았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적습니다. 문장과 정치적 실무가 항상 같지는 않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황의 손자입니다. 아버지가 안응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