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수 白東脩

조선 후기의 무신, 『무예도보통지』 편찬 참여 (호 야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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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743 ~ 1816
시대조선 후기
본관수원 백씨

생애 약력

백동수(白東脩, 1743~1816)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야뇌(野餒)·인재(靭齋)입니다. 서얼 출신으로, 조부 백상화가 서자였습니다. 젊은 시절 검법과 단학(丹學)에 몰두했고, 이덕무·박지원 등 북학 인사들과 두터이 교류했습니다.

1771년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서얼이라는 신분과 관직 부족 때문에 벼슬을 얻기 어려웠고, 1773년 강원도 기린협으로 들어가 농사와 목축으로 지냈습니다. 1776년 정조가 장용영을 조직할 때 창검(무예)의 일인자로 추천받았고, 1789년 이덕무·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비인현감(1792), 박천군수(1802) 등을 지냈고, 1806년 관서 지역의 탐오 문제로 단성현에 정배되기도 했으며, 1810년 군기부정에 제수되었습니다.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그를 두고 '딴 세상을 노니는 사람 같았다'고 평했습니다. 같은 집안 대선배 백인걸이 문(文)으로 이름났다면 그는 무(武)로 이름을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얼 무인의 길

무과 급제 뒤에도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 관직을 얻지 못하고 산골로 들어갔다는 점은 당시 서얼 차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정조는 그의 무예를 알아보고 장용영에 불렀습니다.

『무예도보통지』

1790년 완성된 이 책은 조선의 병기·무예를 그림으로 풀이한 종합 무예서로, 편찬에는 이덕무·박제가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연도 등은 자료마다 약간 다르게 표기되니 정확한 서지는 도서관 자료로 확인하세요.

함께 읽을 인물

같은 시대 이덕무·박제가는 『무예도보통지』를 함께 엮은 학자이며, 백동수는 이들과 평생 교유했습니다. 수원 백씨의 다른 무인으로는 무과 급제자 101명(백인현 등)이 기록에 전한다고 합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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