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

| 생몰 | 1920 ~ 2020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수원 백씨 |
백선엽(白善燁, 1920~2020)은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의 대한민국 군인입니다. 1941년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으며, 1943년 2월 간도특설대로 전근되어 광복 때까지 약 3년간 복무했습니다. 이 이력으로 2008~2009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올라 오늘날까지 논란이 따르며, 본인은 독립군을 직접 토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1사단장으로 참전해 초기 개성·문산·고랑포 방면에서 북한군과 맞섰고,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활약하여 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평양 입성을 두고 미군 부대와 경쟁했고,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에 나섰으며, 휴전회담에 한국군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고, 1953년 1월 한국군 최초의 대장(4성 장군)으로 진급했습니다.
1960년 예편한 뒤 주중화민국·주프랑스·주캐나다 대사와 교통부 장관을 지냈고, 기업 경영과 저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 여러 훈장을 받았습니다. 동생은 선인학원 이사장을 지낸 백인엽(1923~2013)입니다. 2020년 7월 10일 99세로 별세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제1사단장으로서 다부동 전투를 치른 일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다룬 서술이 날짜 등에서 엇갈리기도 하니, 자세한 경과는 전사 자료로 확인하세요.
한국전쟁의 공적과 만주군·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이 함께 거론되어 평가가 크게 엇갈립니다. 한쪽의 주장만 옮기지 않고 사실을 병기해 두었습니다. 같은 성씨 인물 백낙준·백남준과는 다른 분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동생 백인엽(1923~2013)이 선인학원 이사장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