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경 白宇經

수원 백씨 시조 (신라 경덕왕 대 인물로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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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신라 (전승)
본관수원 백씨

생애 약력

백우경(白宇經)은 수원 백씨의 시조로 전하는 인물입니다. 『백씨대동보』 계통의 기록은 그를 중국 소주(蘇州) 출신으로 적고, 당나라에서 벼슬하다가 780년(신라 선덕왕 1) 신라로 건너와 경주 자옥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고 전합니다. 한국어문회 등의 해설도 같은 내용을 소개하면서, 백우경 이전의 조상은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갑자대동보』 같은 족보 계열 서적에 근거한 전승입니다.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이른바 동래설(東來說)은 1637년 대흥 백씨 정축구보의 기록을 바탕으로 1669년에 정리된 내용에 근거한 것이어서 뚜렷한 고증 자료로 보기 어렵고, 같은 시기 다른 족보에 나오는 인물과 연대를 견주어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편 백제 대성팔족의 백씨(苩氏)가 통일신라 시기에 지금의 白氏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거론하는 설명도 있으나, 두 계통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백우경에 관한 내용은 전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의 후손이 수원을 본관으로 삼게 된 과정, 그리고 중시조 백창직과의 사이 세계(世系)는 문헌으로 또렷하지 않으며, 수원 본관이 실제로 쓰인 가장 이른 사례는 조선 초 1427년 친시 과지에 본관을 '수원'으로 적은 백효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조 전승

백우경에 관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780년 신라 도래설입니다.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그가 신라로 건너와 자옥산 아래에 정착했다는 내용으로, 족보 계열 서적을 통해 전해 옵니다. 다만 다른 설명은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사람으로 적고 있어, 도래 시기가 자료마다 다릅니다.

전승을 읽는 법

수원 백씨 시조의 동래설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백우경 이전의 조상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어문회 등 해설의 입장입니다. 1980~90년대에 여러 백씨 본관이 수원으로 합쳐지면서 시조 전승도 하나로 정리되었는데, 이를 두고 일부 오래된 본관(남포·직산·대흥 등)에서는 수원 족보가 분명하지 않다며 반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뿌리는 반드시 보유한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후손

중시조 백창직을 거쳐 후손이 수원을 관향으로 이어 왔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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