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정치인, 국무총리·국회의장 (호 소계)

| 생몰 | 1908 ~ 1993 |
| 시대 | 현대 |
| 본관 | 수원 백씨 |
백두진(白斗鎭, 1908~1993)은 황해도 신천 출신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호는 소계(小溪)입니다. 어린 시절을 한성부에서 보냈고, 1927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34년 도쿄상과대학에서 상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광복 직후 한국은행(당시 조선은행) 이사장에 발탁되어 약 4년 재임했다고 소개되며, 임기 표기는 자료마다 조금 다릅니다. 1952년 10월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되었고, 1953년 4월 24일부터 1954년 6월 17일까지 제4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1970년 12월 21일부터 1971년 6월 3일까지 제10대 국무총리를 다시 맡았습니다. 1953년 총리로서 유엔한국재건단(UNKRA) 단장 콜터와 원조 협정에 조인한 사진이 전합니다.
1971년 7월 26일부터 1972년 10월 17일까지 제8대 국회의장을 지냈고, 1979년 3월 제10대 국회의장에 선출되었으나 10·26 사태 뒤 사퇴했습니다(임기 종료일 표기는 자료마다 다름). 1993년 9월 5일 서울에서 8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를 수원 백씨로 소개하며, 같은 성씨의 백낙준과 함께 정부 요직을 지낸 인물로 꼽힙니다.
상학을 공부한 경제 전문가로 광복 직후 중앙은행을 이끌었고, 전쟁 뒤 복구 원조를 다루는 총리를 맡았습니다.
두 차례 국무총리(제4대·제10대)와 두 차례 국회의장(제8대·제10대 선출)을 지내 한국 정치사에서 드문 이력으로 꼽힙니다. 10대 국회의장 임기 종료 시점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한국은행 이사장 재임 시기와 제10대 국회의장 임기 종료일은 자료마다 달리 적혀 있고, 생일도 음력·양력 표기 차이로 10월 31일로 정리됩니다. 한자 이름과 묘소는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