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거문고 명인, 영해 박씨 족보에 박제상의 아들 박문량으로 전함
| 생몰 | 414(영해 박씨 족보) |
| 시대 | 신라 눌지~자비 마립간 때 |
| 본관 | 영해 박씨 |
백결 선생(百結先生)은 신라 전기의 거문고 명인으로, 몹시 가난해 옷을 백 군데나 기워 입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가문이나 이력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영해 박씨 족보》와 《부도지》 등에 따르면 본명은 박문량(朴文良, 文良)이며 414년(실성 마립간 13)에 태어난 박제상의 아들로, 자비왕 때 금성 낭산 기슭에 살았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이 가계가 족보 등에만 나온다고 밝히므로 전승으로 읽어야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섣달그믐에 이웃집 떡방아 소리를 부러워하는 아내를 위해 거문고로 방아 소리를 내어 달랬다는 〈대악(碓樂)〉입니다. 영계기를 존경해 거문고로 세상의 근심을 잊으려 했다고도 하며, 궁중의 후원을 모두 마다하고 청렴하게 살다 말년에는 종적을 감추었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영해 박씨 족보》에만 나오는 기록으로, 관직을 떠날 때 지었다는 귀향곡 〈낙천악(樂天樂)〉을 소개합니다. 《삼국사기》만으로는 관직 경력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 부분은 문중 전승으로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족보 가계도에는 어머니로 국대부인, 누이로 박아기·박아영·박아경과 미사흔에게 시집간 청아부인이 적히고 양자로 박등흔이 있다고 위키백과는 전합니다.
섣달그믐날 이웃에서 떡방아를 찧는 소리가 들리자 아내가 우리는 무엇으로 설을 쇠느냐고 탄식했고, 선생은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라며 거문고로 방아 소리를 내어 아내를 위로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 곡이 〈대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선생의 가문을 알 수 없다고 하고, 박제상의 아들이라는 설명은 《영해 박씨 족보》와 《부도지》 등에서만 나옵니다. 그러므로 영해 박씨의 한 인물로 소개하되 확정된 사실처럼 단정하지 않습니다.
말년에 종적을 감추었다고 전하며 묘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영해 박씨 족보 등에는 박제상의 아들 박문량으로 적혀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가문 기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