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년 문과 급제, 강릉도존무사·전법판서·이학도감판사를 지낸 고려 문신
| 생몰 | 1282 ~ 134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1348(위키백과)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영해 박씨 |
박원계(朴元桂, 1282~1349)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위키백과 모두 본관을 영해로 적습니다. 위키백과 영해 박씨 항목이 고려 때 문과 급제자로 꼽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할아버지는 박문규, 아버지는 박관이며, 안향의 제자인 권보의 문인으로 전합니다. 사망 연도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1349년(충정왕 1), 위키백과가 1348년으로 적어 한 해 차이가 납니다.
1301년(충렬왕 27) 문과에 급제했으며, 같은 해 급제자 가운데 이제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주목사록 겸 장서기를 지냈고 이어 권지전교교감이 되었습니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에 머물 때에는 예문관검열로서 왕을 보좌했다고 합니다.
1335년(충숙왕 복위 4) 장령으로 있을 때에는 인사 행정의 혼란 속에서 동료 대관 신군평이 서명을 거부한 고신에 서명했다가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집의로 승진하고 강릉도존무사를 거쳐 전법판서를 지냈으며, 1348년(충목왕 4) 이학도감판사가 되었습니다. 근거 문헌으로 《고려사》, 《목은문고》, 《고려명현집》이 소개됩니다.
1301년 문과 급제 뒤 전주목사록 겸 장서기, 권지전교교감을 거쳤습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머물 때 예문관검열로 곁에서 보좌했다는 대목은 그의 이력 가운데 왕의 신임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 읽힙니다.
1335년 인사 문제로 대관들이 맞서던 때, 동료 신군평이 서명하지 않은 고신에 서명했다가 사람들에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평가성 서술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영해 박씨 중시조 박명천도 전법판서를 지냈다고 소개되지만 다른 사람입니다. 박원계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기록된 문신입니다.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301년 문과에 급제해 강릉도존무사, 전법판서, 이학도감판사를 지낸 고려 후기 문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