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아나키스트 (육삼정 의거)
| 생몰 | 1896 ~ 1934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수원 백씨 |
백정기(白貞基, 1896~1934)는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입니다. 호는 구파(鷗波), 자는 용선(溶善)입니다. 3·1운동 때 독립선언문과 전단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가 항일운동을 이끌었고, 1919년 8월부터는 일본인과 일본 군사시설을 공격하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1924년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설립에 관여했고, 상하이에서는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결성에 참가해 기관지 『정의공보』를 비밀리에 발행했습니다. 1932년 자유혁명자연맹을 조직했다가 흑색공포단(BTP)으로 이름을 바꾸어 대일 투쟁을 이어 갔습니다.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 때에도 거사를 준비했으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1933년 3월 상하이 육삼정에서 중국 주재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암살하려다 체포되었고, 나가사키 법원에서 원심창과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1934년 6월 5일 일본 구마모토 형무소에서 지병으로 38세에 옥사했습니다. 1946년 7월 6일 이봉창·윤봉길과 함께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는 국민장이 치러졌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를 수원 백씨로 분류하며, 백인걸의 후손으로 소개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민족주의나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점이 특징입니다. 상하이에서 여러 동지와 함께 조직을 만들고 기관지를 냈습니다.
1933년 3월의 육삼정 의거는 사전에 일본 경찰에 알려져 실패했고 참가자들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순국했고, 광복 뒤인 1946년 이봉창·윤봉길과 함께 효창공원에 안장되어 삼의사로 기려집니다.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이봉창·윤봉길과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