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사회경제사학자

| 생몰 | 1894 ~ 1979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수원 백씨 |
백남운(白南雲, 1894~1979)은 전북 고창군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사회경제사학자입니다.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해 강화보통학교 교원과 강화군 삼림조합 기술자로 일했고, 1918년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925년 귀국해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유물사관에 입각해 식민사관의 조선 정체성론을 비판하며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조선민족해방투쟁사』 등을 펴냈습니다. 일제 말에는 투옥을 겪은 한편 친일 단체 강연에 나선 일도 있어 평가가 엇갈립니다.
광복 뒤 조선학술원과 경성대학에서 일했고, 남조선신민당 대표·근로인민당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1948년 남북협상에 참여한 뒤 월북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초대 교육상(1948~1956)과 최고인민회의 의장(1967~1972) 등을 역임했고 1979년 6월 12일 평양에서 사망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를 수원 백씨로 분류합니다. 학문 업적과 월북 이후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분야마다 다르므로, 여기서는 확인되는 사실만 적었습니다.
일제의 정체성론에 맞서 한국사도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단계를 거쳤다고 주장한 『조선사회경제사』(1933)는 한국 사회경제사 연구의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간행 연도 등은 서지로 확인하세요.
남북협상 참가 뒤 월북한 일은 이후 한국에서 그의 연구를 오래 다루기 어렵게 했습니다. 학문과 정치 활동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갈립니다.
본관은 한국어 위키백과의 분류('수원 백씨')에 따랐습니다. 월북 전후의 행적과 일제 말 강연 활동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마다 다르며, 이 글은 평가를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평양에서 사망했으며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