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3·1운동 · 애족장(1990)
| 생몰 | 1890 ~ 1977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밀양 박씨 |
박복영(朴福永, 1890~1977)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단고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08년 목포 성경학원에 입학해 세례를 받은 뒤 목포 양동교회 교인들이 결성한 항일 비밀결사 일심회(一心會)에 가입하였고, 1919년 4월 8일 서상봉·강석봉 등 동료들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해 목포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이 일로 옥고를 치른 뒤 1920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의 집에 머물며 그를 보필하였고, 1922년부터는 국내에서 임시정부 군자금 조달 임무를 맡았습니다. 1925년 3월에는 이시영의 비밀문서를 이상재(李商在)에게 전달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귀향 후에는 1923년 암태청년회 회장, 1925년 암태소작인회 총대표를 맡아 암태도 소작쟁의를 이끌었고, 1945년 광복 후에는 무안군 건국준비위원장을 지냈습니다. 1977년 별세하였으며, 정부는 그해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그의 유해는 대전광역시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