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박씨(密陽 朴氏) — 신라 경명왕의 아들 밀성대군 박언침을 시조로 전하는, 박씨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본관입니다.

신라 경명왕의 아들 밀성대군 박언침을 시조로 전하는, 박씨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밀양 박씨 인구는 약 3,103,94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밀양)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밀양 박씨(密陽 朴氏)는 경상남도 밀양, 곧 옛 밀성(密城)을 본관으로 하며 밀성 박씨라고도 부릅니다. 모든 박씨의 도시조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이고, 밀양 박씨의 시조는 그 후손인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입니다. 밀성을 식읍으로 받은 그의 후손이 이곳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조선 시대 박씨 족보에는 경명왕의 여덟 대군이 각지에 봉해져 여러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른바 '신라 팔대군 분봉' 전승이 실려 있습니다. 1662년 간행된 밀양 박씨 『숭정임인보』에 따르면 맏아들 밀성군이 밀양 박씨, 사벌군이 상주 박씨, 완산군이 전주 박씨, 죽성군이 죽산 박씨, 속함군이 함양 박씨, 강남군이 순천 박씨, 고양군이 고령 박씨, 월성군이 경주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전승은 여러 박씨 본관이 한 뿌리라는 인식을 보여 주는 자료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밀성대군의 아들 박욱이 고려에 출사한 이래 후손들이 관직에 진출했고, 고려 문종 때 문하시중에 오른 박언부를 비롯해 박언상·박언인 등이 나와 밀양 박씨의 큰 갈래를 이루었습니다. 박언부의 밀성부원군파, 박언상의 도평의사사공파, 박언인의 좌복야공파를 중심으로, 밀직부사공파·판도판각공파·삼사좌윤공파·사문진사공파·충헌공파·영동정공파·밀직부원군파·정국군파·규정공파 등이 흔히 '밀양 박씨 12파'로 일컬어집니다.
고려 말에는 1389년 경상도도순문사로 전함 100여 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한 박위, 조선 개국 후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은 송은 박익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좌복야공 박언인의 후손 난계 박연이 세종 대 아악을 정비해 '악성(樂聖)'으로 불렸고, 규정공파에서는 박강생의 아들 박심문과 손자 박중손, 증손 박건이 잇달아 이름을 떨쳤습니다. 광해군 때에는 박승종이 영의정에 올랐으며, 조선 후기에는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가 나왔습니다. 위키백과에 정리된 통계에 따르면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261명, 무과 급제자 1,125명, 생원·진사 756명을 배출했습니다.
근현대에는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한 박차정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왔고, 포스코를 세운 박태준도 이 가문 출신입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300만 명이 넘게 집계되어, 김해 김씨 다음으로 큰 본관입니다.
밀양 박익 벽화묘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에 있는 송은 박익의 무덤으로, 1420년(세종 2)에 조성되었습니다. 1999년 태풍으로 무너진 봉분을 보수하다가 지석과 함께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조선 시대 것으로는 처음 확인된 채색 벽화묘로 200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박익은 밀양의 덕남서원·신계서원과 용강사에 제향되었습니다.
영동 난계사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에 있는 박연의 사당으로 1976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들이 향사를 올립니다. 영동에서는 해마다 난계국악축제가 열리고 난계국악박물관도 있어 박연의 자취를 기리고 있습니다.
박중손 묘역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으며, 묘역의 4각 장명등이 조선 시대 석조 미술 자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밖에 정국군파가 관리하는 밀양 신남서원, 충헌공파의 경모재 등 각 파의 재실과 서원이 전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밀양 박씨 족보 — 1620년(광해군 12) 박안행이 박승종의 도움을 받아 경신보(庚申譜)를 펴냈고, 이를 바로잡아 그 아들 박승건이 1662년 『숭정임인보』를 간행했습니다. 규정공 14세손 박승건이 호남에서 목판으로 찍은 이 족보는 밀양 박씨 초기 족보의 모습을 전해 줍니다.
집성촌으로는 경남 밀양·의령·진주·통영·함양·합천, 경북 경주·김천·상주·청도, 전남 보성·장성·진도, 전북 남원, 충남 천안·금산·예산, 충북 청주·영동, 제주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밀성부원군파, 도평의사사공파, 좌복야공파, 국당공파, 충헌공파, 정국군파, 규정공파, 청재공파
밀성부원군파는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태사(太師)를 거쳐 문하시중에 오르고 밀성부원군에 봉해진 박언부(朴彦孚)를 파조로 합니다. 문하시중공파·태사공파라고도 불리며, 밀양 박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계통으로 꼽힙니다.
종파인 은산부원군파(박영균)를 비롯해 사문진사공파(박원), 충헌공파(박척), 밀직부원군파(박중미), 규정공파(박현) 등이 이 계통에서 다시 갈라진 것으로 정리됩니다. 은산부원군 박영균의 아들 송은(松隱) 박익(朴翊)은 조선 태조의 부름에 끝내 응하지 않은 고려 말 팔은(八隱)의 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도평의사사공파는 고려 때 도평의사사를 지낸 박언상(朴彦祥)을 파조로 하며, 도평의사공파라고도 부릅니다. 박언부·박언인과 같은 세대에서 갈라진 밀양 박씨의 오래된 분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후대에 돈재공파(박연생)와 봉산군파(박간) 등으로 다시 나뉘었으며, 돈재공파 아래에 백우당공파(박상의)·정혜공파(박수량) 등의 지파가 있습니다.
좌복야공파는 고려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박언인(朴彦仁)을 파조로 하며, 복야공파라고도 합니다. 박언부·박언상과 같은 세대에서 갈라진 밀양 박씨 초기 분파의 하나입니다.
후대에 문림랑공파와 보승랑장공파 등으로 나뉘었고, 보승랑장공파 아래의 난계공파는 세종 때 아악을 정비한 음악가 난계(蘭溪) 박연(朴堧, 1378~1458)을 파조로 합니다. 국당공파(박흥생)·이요당공파(박흥거)도 이 계통에 속합니다.
밀양 박씨(密陽 朴氏) 국당공파(菊塘公派)는 밀양 박씨의 주요 소파 가운데 하나로, 국당(菊塘) 박흥생(朴興生, 1374~1446)을 파조로 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충헌공파(忠憲公派)는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의 후손으로, 박척(朴陟)을 파조로 합니다. 밀양 박씨 12파의 하나이며, 밀성부원군파(박언부) 계통에서 갈라진 파로 정리됩니다. 박척의 세수(世數)는 기준에 따라 밀성대군의 18세손, 시조 기준 13세손 등으로 다르게 적힙니다.
충헌공파에서 다시 판서공파·대제학공파·정언공파 등의 소파가 갈라졌습니다.
재실·유적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귀명리에 충헌공파 재실인 경모재(景慕齋)가 있고,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에는 선조를 배향하는 원덕사가 있습니다.
주요 항렬자 — 시조 64세(파조 23세) 이후의 돌림자입니다. O는 이름의 나머지 글자 자리입니다.
| 시조 기준 | 파조 기준 | 항렬자(돌림자) |
|---|---|---|
| 64세 | 23세 | O준(準), 호(浩)O |
| 65세 | 24세 | 치(稚)O, O보(輔) |
| 66세 | 25세 | 광(光)O, O훈(勳) |
| 67세 | 26세 | 수(壽)O, O희(羲) |
| 68세 | 27세 | O선(善), 현(鉉), 석(錫) |
| 69세 | 28세 | O영(泳), 수(洙), 택(澤) |
| 70세 | 29세 | O식(植), 근(根), 항(恒) |
| 71세 | 30세 | 엽(燁), 유(裕), 섭(燮), 훈(勳)O |
| 72세 | 31세 | O희(喜), 곤(坤), 재(宰), 길(吉) |
공식 정보 — 상세 계보와 항렬은 밀성박씨충헌공파 대종회 홈페이지와 충헌공파 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의 갈래·세수와 항렬은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정국군파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박위(朴葳, ?~1398)를 파조로 하며, 삼사좌윤공파의 후예로 정리됩니다. 박위는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였고, 1389년(창왕 1) 경상도 도순문사로서 전함 100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하였습니다.
이후 회군공신으로 정국군(靖國君)에 봉해졌으며, 파명은 이 군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밀양의 신남서원(新南書院)이 박위와 아들 박기를 기리는 곳으로, 정국군파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규정공파는 고려 때 사헌부 규정(糾正)을 지낸 박현(朴鉉)을 파조로 하며, 박현은 시조의 16세로 기록됩니다. 밀양 박씨 분파 가운데 후손이 가장 번성한 파로 꼽히며, 조선 시대에 유학과 과거에서 두각을 나타내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낙촌공파(박충원), 강수문도공파(박훈), 공간공파(박건), 청재공파(박심문) 등 수십 개의 지파로 나뉘었으며, 광해군 때 정승을 지낸 박승종(朴承宗)은 낙촌공파에서 갈라진 숙민공파의 파조입니다.
청재공파는 규정공파에서 갈라진 지파로, 청재(淸齋) 박심문(朴審問, 1408~1456)을 파조로 합니다. 박심문은 증조 박사경, 할아버지 박침, 아버지 찬성사 박강생으로 이어지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436년(세종 18) 친시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장령·예조정랑·평안도판관 등을 지냈습니다.
가문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성삼문·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도모했으나, 명나라에 질정관으로 다녀오던 중 의주에서 사육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실록의 기록은 매우 적지만, 순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1871년(고종 8) 충정(忠貞)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형 박절문의 아들 박중손과 손자 박건의 공간공파 계통과는 가까운 갈래입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박언침(밀양 박씨 시조·밀성대군), 박언부(고려 문하시중·밀성부원군), 박익(고려 말 절신·송은), 박위(대마도 정벌 장수), 박연(세종 대 음악가·난계), 박심문(단종 충신·청재공), 박중손(조선 정난공신), 박승종(광해군 때 영의정), 박제가(실학자), 박은식(독립운동가·임시정부 대통령), 박상진(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차정(여성 독립운동가), 박태준(포스코 창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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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밀양 박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밀양 박씨 계열 인물입니다.
밀양 박씨(密陽 朴氏)는 경상남도 밀양을 본관으로 하며, 박씨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본관입니다. 박씨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를 도시조로 하는데, 밀양 박씨의 시조는 그 후예인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입니다.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로, 밀성(밀양)을 식읍으로 받아 후손이 이를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밀양 박씨는 대를 이어 여러 파로 갈라졌으며, 조선시대 많은 문신·학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오늘날 전국에 고루 분포하는 대표적인 성씨의 하나입니다.
박혁거세 → 경명왕 → 밀성대군 박언침 → 12파 파조밀양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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