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3·1운동 · 독립장(1990)
| 생몰 | 1855 ~ 1940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밀양 박씨 |
박인호(朴寅浩, 1855~1940)는 충청도 예산 출신으로 1883년 동학(훗날의 천도교)에 입교하였고, 동학농민혁명 때는 접주로서 여러 고을의 전투에 참여해 전과를 올렸습니다. 1908년 1월 18일 손병희의 뒤를 이어 천도교 제4대 대도주가 되었으며, 보성전문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를 인수·설립해 훗날 독립운동에 나선 민족 지도자들을 길러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천도교 자금 중 약 6만 5천 원을 운동 자금으로 지원하고 《조선독립신문》 약 1만 부를 배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일로 1919년 3월 10일 체포되어 1년 9개월간 수감되었으나 1920년 12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손병희 사후에는 최린의 신파와 대립하며 비타협적 노선을 지켰고, 1939년 2월 1일 교단 활동에서 물러난 뒤 이듬해 서울에서 별세하였습니다. 그의 묘소는 1964년 경기도 포천으로 이장되었으며,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경기도 포천 (1964년 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