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림 卞東琳

수필가·미술평론가·서양화가, 필명 김향안, 시인 이상의 아내이자 화가 김환기의 아내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환기미술관 외부 — 변동림의 인물 사진이 아닌 미술관 사진 · CC BY 4.0 · Wikimedia Commons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환기미술관 외부 — 변동림의 인물 사진이 아닌 미술관 사진 · CC BY 4.0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Cool Supace, Wikimedia Commons)
생몰1916 ~ 2004
시대일제강점기·대한민국
본관초계 변씨

생애 약력

변동림(卞東琳, 1916~2004)은 대한민국의 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 서양화가로 본관은 초계이며 경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김향안(金鄕岸)이라는 필명으로 주로 글을 썼습니다. 2004년 2월 29일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에 다니다가 중퇴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과 결혼했으나 이상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결혼 생활은 4개월 만에 끝났다고 위키백과가 전합니다. 1944년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학교와 에콜 뒤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했고, 주로 파리를 소재로 한 수필을 썼습니다. 1964년에는 서양화가로 화단에 등단했습니다. 남편 김환기는 1964년 이후 아내와 함께 미국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다 1974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김환기를 기리는 환기미술관은 환기재단에 의해 19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세워졌습니다.

필명 김향안

변동림은 김향안이라는 필명으로 수필을 썼습니다. 주로 파리를 소재로 삼은 글이 알려져 있으며, 미술사와 미술평론 공부가 글쓰기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도 그를 수필가·미술평론가로 소개합니다.

이상과 김환기

시인 이상과 결혼했으나 4개월 만에 이상의 죽음으로 끝났고, 1944년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습니다. 김환기는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1959년 귀국했고 1964년 이후 미국에 머물렀으며, 그 곁을 지킨 사람이 김향안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환기미술관

환기미술관은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 환기재단법인이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정리하고 소개하기 위해 1992년 서울 부암동에 세운 미술관입니다. 변동림이 이 미술관 설립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이번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

묘소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변동림 자주 묻는 질문

변동림과 김향안은 같은 사람인가요?

그렇습니다. 변동림은 김향안이라는 필명으로 수필을 썼습니다.

누구와 결혼했나요?

시인 이상과 결혼했으나 4개월 만에 이상이 세상을 떠났고, 1944년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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