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때 문과에 급제해 장령을 거쳐 승지에 오르고 『인조실록』 편수에 참여한 문신 (자 우경, 호 이지당)
| 생몰 | 1598 ~ 1653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초계 변씨 |
변시익(卞時益, 1598~165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초계, 자는 우경(虞卿), 호는 이지(二知) 또는 이지당(二知堂)입니다. 변효문의 6세손이며, 증조부는 변충남, 조부는 변경복, 아버지는 변유인으로 위키백과가 전합니다. 어머니는 평산 신씨입니다. 이 집안은 변충남 때 충북 청주에 자리를 잡은 제학공파 후손입니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628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1634년 정언에 임명된 뒤 사헌부 지평을 거쳐 1640년 장령으로 승진했는데, 이들 자리는 모두 임금과 관료를 감찰하고 간언하는 대간(臺諫) 계통의 관직이었습니다.
1650년(효종 1)에는 사헌부 장령 겸 춘추관 편수관으로서 『인조실록』 편수에 참여했습니다. 1652년 심액 등의 죄를 추고하라는 왕명을 받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1653년 다시 승지에 임명되었으나 같은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청주의 초계 변씨는 제학공파 13세손 변충남이 중종 때 처가 터전인 내수읍 비홍리로 옮기면서 자리 잡았다고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이 전합니다. 변시익은 변충남의 증손으로, 그 뒤 후손들은 내수읍 비상리·초정리·우산리에 동족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1634년 정언, 이후 지평과 장령을 거친 그는 대간의 일원으로 일했습니다. 1650년 『인조실록』 편수 참여는 그의 문장과 학식이 인정받았음을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대종회의 유물·유적 목록에는 '변시익 선정비'가 올라 있습니다. 같은 집안의 변경복·변익하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청주 청원구 비상리에 효자비·효자각이 세워져 2015년 청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椒井里)에 있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아들로 변박(생원)·변강(무과)·변위를 적고, 형은 변시망, 아우는 변시석으로 전합니다.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해 장령을 거쳐 승지에 오르고 『인조실록』 편수에 참여한 초계 변씨 문신입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 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