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신주무원록』 편찬과 『오례의주』 상정에 참여하고 1443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문신, 제학공파 파조 (자 일민)
| 생몰 | 1396 ~ 1461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초계 변씨 |
변효문(卞孝文, 1396~?)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초계, 자는 일민(一敏), 초명은 변계문(卞季文)입니다. 한성판윤 변남룡(卞南龍)의 아들이고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변빈(卞贇)의 손자이며, 외조부는 염제신(廉悌臣)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사망 연도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위키백과는 1461년 4월 20일로 적고 있어 자료에 차이가 있습니다.
1414년(태종 14) 알성 문과에 을과 3등으로 급제해 직제학을 지냈고, 세종 때 봉상시소윤·판내섬시사·첨지중추원사를 거쳐 경창부윤과 전주부윤까지 올랐습니다. 1438년 최치운 등과 함께 법의학서 『신주무원록』을 편찬했고, 1444년 『오례의주』 상정에 참여했습니다. 위키백과는 1429년 『농사직설』 편찬에도 참여했다고 적습니다.
1443년에는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건너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주와 맺은 무역 약정이 계해약조(癸亥約條)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관직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회령대후 시절의 일과 일본 사행 때의 수행원 문제, 아들의 무과 청탁 등으로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고 1458년 전주부윤 재직 중 축재한 죄로 파직되었다고 기록됩니다. 후손들은 그를 제학공파의 파조로 모십니다.
증조부 변경(卞卿), 조부 변빈, 아버지 변남룡으로 이어지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414년 알성 문과에서 을과 3등으로 급제했습니다. 어머니 파주 염씨는 염제신의 딸로 기록됩니다.
1438년 최치운·이세형·김황 등과 함께 원나라 왕여의 『무원록』에 주해와 음훈을 더한 『신주무원록』을 편찬했습니다. 1444년에는 『오례의주』를 상정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위키백과는 1429년 정초 등과 함께 농서 『농사직설』을 펴냈다고도 적지만 대백과 항목에는 이 내용이 없어, 자료에 따라 다르게 서술된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1440년 첨지중추원사가 된 그는 1443년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건너갔고,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주와 무역에 관한 약정을 맺었는데 이것이 계해약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행 때 이인휴를 수행원으로 데려간 일로 다시 탄핵을 받았다고 기록됩니다.
1441년 회령대후 재직 때 귀화한 여진인에게 옷을 내린 일로 탄핵되어 파직된 적이 있고, 1447년에는 훈련제조로서 아들의 무과와 관련해 청탁했다는 이유로 직산에 장류되었습니다. 1454년 중추원부사를 거쳐 경주부윤·전주부윤을 지냈고,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때 『완산별곡』을 지었습니다. 1458년 전주부윤으로 있다가 불법으로 재물을 모았다는 죄가 적발되어 파직되었습니다.
대종회의 유물·유적 목록에 '변효문 신도비'가 올라 있으나, 묘소와 신도비의 정확한 위치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로 변균·변심·변흠이 전하며, 증손이 갑자사화 때 화를 입은 변형량입니다. 6세손에 승지 변시익이 있고, 동생은 변효경입니다.
세종 때 『신주무원록』을 편찬하고 『오례의주』 상정에 참여했으며 1443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1443년 통신사로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주와 맺은 무역 약정이 계해약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계 변씨 장파 계열의 제학공파 파조로 모셔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