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를 거쳐 광복 후 성균관대학교 제4대 총장을 지낸 교육가 (호 일파)

| 생몰 | 1894 ~ 1966 |
|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
| 본관 | 초계 변씨 |
변희용(卞熙瑢, 1894~1966)은 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 운동가이며 대한민국의 교육가·저술가로, 본관은 초계이고 호는 일파(一波)입니다.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고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순천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18년 조선유학생학우회에서 활동했고 1919년 2·8 독립선언에 참가했다가 구금되었습니다. 1921년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한 뒤 사상단체 코스모스구락부에 가입하고 김약수 등과 『대중시보』를 창간했으며, 1923년 북성회 결성에 참여했습니다. 1924년 귀국해 조선청년총동맹을 결성했고, 같은 해 조선공산당 초급행정위원이 되었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대표행정위원과 고령지회장을 맡았습니다.
광복 뒤 1945년 한국민주당에 입당하고 대공일보사 편집위원, 잡지 『재건』 편집주간을 지냈습니다. 1947년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1960년 4·25 교수 시위에 참가했으며, 같은 해 5월 24일 성균관대학교 제4대 총장에 취임해 1961년 7월 31일까지 재임했습니다. 1966년 3월 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1918년 조선유학생학우회 활동과 1919년 2·8 독립선언 참가가 위키백과 약력에 오릅니다. 졸업 후에는 코스모스구락부, 북성회 등 사상단체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 사회주의 운동의 한 갈래인 북풍파를 대표해 김약수·김종범과 함께 국내 조직국 13인회에 참석했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1927년 신간회 대표행정위원이 되었고 경상북도 고령지회장을 겸했습니다. 신간회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함께 만든 단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9년 지회장을 물러난 뒤에도 대표행정위원 직은 1930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입당했고 1947년 성균관대학교 교수, 1959년 명예교수가 되었습니다. 1960년 5월 24일 제4대 총장으로 취임해 1961년 7월 31일 물러났습니다. 1964년에는 문교부 교육행정특임촉탁위원으로 잠시 일했습니다.
묘소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신간회 등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광복 후 성균관대학교 제4대 총장을 지낸 교육가입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순천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