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신문』 주필을 거쳐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낸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대상, 다른 이름 변영헌)

| 시대 | 대한제국·일제강점기 |
| 본관 | 초계 변씨 |
변일(卞一, 생몰 미상)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으로, 다른 이름은 변영헌(卞榮憲)입니다. 위키백과의 분류에 따라 초계 변씨로 분류되며, 이 글은 그 분류에 근거합니다. 생몰 연대는 전하지 않습니다.
1907년 정운복이 사장이던 『제국신문』의 주필로 처음 언론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대한매일신보』 기자, 가정잡지사 총무, 『대동일보』 편집부장을 지냈습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직후에는 『매일신보』의 발행인 겸 편집인에 임명되어 1910년 10월 22일부터 1915년 1월 29일까지 약 4년 3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였고 이 기간 동안 일본 메이지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고 독립운동 참가를 비하하는 내용의 사설이 실렸다고 위키백과는 설명합니다. 변일은 1915년 매일신보사를 퇴직한 뒤 1921년 『조선상공신문』 주간을 맡았고,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의 언론 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1907년 『제국신문』 주필로 처음 이름이 나오며, 이후 『대한매일신보』 기자와 『대동일보』 편집부장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 신문은 계몽과 정치 논의의 중요한 마당이었으므로 그의 이력은 대한제국 말 언론의 흐름과 이어집니다.
1910년 10월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에 임명되어 1915년 1월까지 일했습니다. 이 신문은 일본 제국주의의 입장을 대변한 기관지로 평가되며, 그 시기 사설의 성격 때문에 변일이 훗날 친일 언론인으로 거론되었습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06인 명단의 언론 부문에 선정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들었습니다. 1938년 매일신보 창간 34주년 행사에서 발언한 기록이 있으나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생몰과 묘소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제국신문 주필을 거쳐 1910년부터 약 4년간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낸 언론인입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106인 명단 언론 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