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삼절로 불린 문장가, 자는 복원·호는 오산, 『오산집』『오산설림』의 저자
| 생몰 | 1556 ~ 161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차씨 |
차천로(1556~1615)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로, 본관은 연안, 자는 복원, 호는 오산입니다. 평해군수를 지낸 차식의 아들이며 아우는 차운로입니다.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배웠고, 1577년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개성부교수를 지냈으며, 1583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다시 급제해 두 번 과거에 오른 인물로 소개됩니다.
문장에 뛰어나 한호(한석봉), 최립과 함께 '송도삼절'로 일컬어졌고, 아우 차운로와 성균진사 마상원과 함께 '양차일마(兩車一馬)'로 불렸다고 합니다. 1589년에는 통신사 황윤길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고 그 곳에서 4천~5천 수의 시를 지어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합니다. 명나라로 보내는 외교문서를 대부분 그가 지어 '동방문사'라는 칭호를 얻었고, 명나라 사신들이 즉석에서 시험하는 속작에도 거침없이 응해 이름을 더욱 떨쳤습니다.
한편 1586년 정자로 있을 때 고향 사람 여계선의 과거 표문을 대신 지어 장원급제하게 했다가 발각되어 명천으로 유배되었는데, 문장의 재주가 아까워 1588년 용서받고 승문원에 복귀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광해군의 분조를 수행한 공로로 1614년 위성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저서로 『오산집』과 『오산설림』 등이 있으며, 무덤은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에 있다고 전합니다.
'송도삼절'은 한호의 글씨, 최립의 산문, 차천로의 시를 합쳐 이르던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차일마'는 차천로·차운로 형제와 마상원을 한데 묶은 별칭입니다. 이 두 별칭은 모두 그가 문장으로 이름 높았음을 보여 줍니다.
1586년의 일은 그의 재능과 한계를 함께 보여 줍니다. 고향 사람을 위해 시험 문장을 대신 써 주어 장원이 되게 했다가 발각되어 명천으로 유배되었고, 이듬해 해배의 은전을 받아 승문원에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시각으로는 부정행위지만 당시에도 처벌 대상이었다는 점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증손 차건의가 1790년 무렵 충남 당진 대호지면 적서리에 낙향했고, 후손들은 문원사를 세워 영정을 모십니다. 아우 차운로의 후손은 창주공파를 이루었다고 전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산공파 카드를 참고하세요. 1792년 정조는 왕명으로 그의 저서를 간행하게 했습니다.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에 무덤이 있다고 전합니다. 후손들이 당진 대호지면에 문원사를 세워 영정을 모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