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정랑·개성부교수를 지낸 문신, 차천로의 아우, 자는 만리·호는 창주
| 생몰 | 1559 ~ 163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차씨 |
차운로(1559~1637)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 자는 만리, 호는 창주입니다.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지낸 차식이며, 형은 송도삼절로 이름난 차천로입니다. 공조정랑·개성부교수·봉상시판관 등을 지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소개합니다.
당대에는 집안 문벌이 높지 않았으나 형 차천로와 함께 문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을 아울러 중국 송나라의 소순·소식·소철 삼부자에 견줄 만큼 시문으로 유명했다고 전하며, 형제는 성균진사 마상원과 함께 '양차일마(兩車一馬)'로 불렸습니다.
그의 호에서 이름을 딴 창주공파는 오산공파와 함께 당진을 중심으로 후손이 이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시화에서 이안눌의 시를 평한 『호곡시화』 등에서 그의 비평이 인용되는 점도 그가 시를 보는 눈이 있는 문인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생애의 세부 사항은 대백과 외에 충분히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차운로는 형 차천로의 그늘에 가려지기 쉬우나 같은 시대 사람들은 형제를 한데 묶어 평가했습니다. '양차일마'라는 별칭이 대표적이며, 이는 한 집안에서 문장가 두 사람이 나온 일이 드물었음을 보여 줍니다.
당진 지역에는 오산공파와 함께 창주공파 후손이 세거한다고 전합니다. 두 파는 아버지 차식에게서 갈라진 형제 계통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공유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산공파 카드를 참고하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