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를 제거한 위사공신, 고려 무신, 연안 차씨 4파로 갈리는 기점으로 전해지는 인물
| 생몰 | 1268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연안 차씨 |
차송우(?~1268)는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연안입니다. 연안 차씨 문중에서는 16세손으로 소개되며, 그의 후손에서 문학공파·전서공파·월파공파·송림백공파의 4파가 갈라졌다고 전해집니다(상장군공파를 포함해 5파로 정리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따라서 후대 연안 차씨 파계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1258년(고종 45) 별장동정으로서 유경·김인준(김준)·임연 등과 함께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정 최의를 제거하는 일에 참여해 위사공신에 책봉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4대 60여 년 이어진 최씨 무신 정권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공을 기려 고향 염주는 이듬해인 1259년 지복주사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
1262년(원종 3) 공신당이 중건될 때 장군 차송우는 공신으로 벽상에 화상이 그려졌고, 1266년에는 송나라 해적선 1척을 노획해 70여 명을 죽이고 5명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268년 대장군 최휘, 장군 강보충·현수·박승익 등과 함께 김준의 일당으로 몰려 임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1258년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 최의가 제거된 사건은 이른바 무오정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차송우는 이 일에 참여한 무관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며, 위사공신(衛社功臣)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사직을 지킨 공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연안의 고려 때 이름은 염주였고, 차송우의 공으로 1259년 복주로 승격되었습니다. 문중은 그를 16세손으로 모시며 이후의 파가 그에게서 나뉘었다고 설명합니다. 자세한 파는 월파공파·문학공파 카드를 참고하세요.
1268년 임연이 김준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김준 쪽 인물로 분류된 여러 장군과 함께 살해되었습니다. 무신 사이의 권력 다툼에서 공신이 희생된 사례로 읽히며,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시기로 접어듭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