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애의 난 때 선봉장으로 출전해 전사한 적개공신, 호는 쌍청당, 강렬공파 파조
| 생몰 | 1393 ~ 1467 |
| 시대 | 조선 초기 |
| 본관 | 연안 차씨 |
차운혁(1393~1467)은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연안이며 호는 쌍청당입니다. 시호는 강렬(剛烈)로 전해지는데 자료에 따라 '강열'로도 표기됩니다. 연안 차씨 문중에서는 문절공 차원부의 조카로 모시며, 그의 후손이 강렬공파를 이룹니다. 자는 홍기로 소개되는데 한자 표기(洪器·弘器)가 자료마다 다릅니다.
1467년(세조 13) 함경도에서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75세의 고령으로 선봉장이 되어 출정해 큰 공을 세우고 전사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전합니다. 순천시 자료는 단천에서 전사했다고 적습니다. 반란이 평정된 뒤 적개공신에 책봉되었는데, 대백과는 1469년(예종 1) 2등으로, 다른 자료는 3등으로 적어 등급이 갈립니다.
그의 행적을 모은 『쌍청당실기』의 책판 98매는 합천군 청덕면 성태리 연안 차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으며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후손들은 충남 당진 대호지면, 대구 달성군 현풍읍, 경북 성주군 용암면 등에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1467년의 이시애의 난은 함경도 토호 출신이 중앙의 북방 정책에 맞서 일으킨 대규모 반란으로, 세조는 대군을 보내 진압했습니다. 차운혁은 75세의 노장으로 선봉에 섰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서술은 대백과와 문중 기록에 근거하며, 나이와 전사 장소는 자료마다 표기가 약간 다릅니다.
쌍청당실기 책판은 98매로, 연안 차씨 문중이 합천에 소장하고 있습니다. 후손은 당진·현풍·성주 등지에 마을을 이루었고, 자모리에는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차순라의 후손이, 본리리에는 차운혁의 8세손 차인이 영조 때 입향한 이래 후손이 세거한다고 전합니다.
합천 덕원서원에 차포온·차원부와 함께 모셔졌고,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