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군수를 지낸 문신, 차천로·차운로의 아버지, 서경덕의 문인, 호는 이재
| 생몰 | 1517 ~ 157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차씨 |
차식(1517~157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 자는 경숙, 호는 이재입니다. 증조부는 차보인, 조부는 차계생, 아버지는 차광운이고 어머니는 최지의 딸이며, 부인 아주 이씨와의 사이에 5남 3녀를 두었습니다. 유명한 문장가 차천로·차운로 형제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537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호조·예조·봉상시·교서감·승문원 등에서 좌랑·주부·교리·교감을 두루 지냈고, 지방으로는 통진·항주·해주·평해·고성의 현감과 군수를 지냈습니다. 경사(經史)에 두루 통하고 문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으며, 유몽인이 쓴 신도비문에 따르면 서경덕의 문인이었다고 전합니다.
1575년(선조 8) 평해군수로 재직하다 상한(傷寒)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집 5~6권을 남겼다고 하나 병화에 소실되었다고 전합니다. 두 아들과 함께 송나라의 소순·소식·소철 삼부자 '삼소'에 비유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는 문장으로 이름난 집안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증조 차보인, 조부 차계생, 아버지 차광운으로 이어지며, 아들로는 차천로와 차운로가 알려져 있습니다. 5남 3녀 가운데 두 아들이 문장으로 이름을 얻어 가문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송도(개성)의 학자 서경덕의 문인이라는 전승은 유몽인의 신도비문에 근거합니다. 아들 차천로 또한 서경덕 문하에서 배웠다고 전해, 개성 지역 학풍과 이어진 집안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의 글을 모은 문집은 병화로 소실되었다고 하여, 오늘날 문장 자체를 읽어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평가는 주로 후대 기록과 아들들의 명성에 기대고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