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부 車原頫

고려 말 간의대부, 성리학자·화가, 두문동 72현으로 꼽힌 문절공, 호는 운암

합천 덕원서원(차원부를 모신 서원) — 인물 사진이 아닌 유적 사진
합천 덕원서원(차원부를 모신 서원) — 인물 사진이 아닌 유적 사진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 Wikimedia Commons
생몰1320
시대고려 말·조선 초
본관연안 차씨

생애 약력

차원부(1320~?)는 고려 후기의 학자이자 화가로, 본관은 연안, 자는 사평, 호는 운암, 시호는 문절입니다. 아버지는 지방어사 차종로로, 월파공파 문중은 그를 차종로의 셋째 아들로 모십니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쳐 간의대부에 이르렀고, 정몽주·이색과 함께 이름을 날린 유학자로서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고려 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수습이 어렵다고 보고 관직을 사퇴한 뒤 평산 수운암동에 은거했습니다. 이성계가 요동 공격을 준비하며 계략을 묻자 출병을 반대했고, 조선이 개국한 뒤에는 태조가 공신으로 책록하려 했으나 사퇴했으며 정언·판전농시사 같은 관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행적 때문에 그는 고려에 충성한 두문동 72인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림에도 뛰어나 특히 매화를 잘 그렸다고 합니다.

최후에 관해서는 대백과가 이렇게 전합니다. 정도전·하륜 등이 차씨 외손의 서속이었던 사실을 족보에 그대로 기재해 원한을 샀고, 평산으로 돌아가던 길에 송원에서 하륜 등이 보낸 자객에게 가족과 일당 80여 명과 함께 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문중과 후대 기록에 전하는 이야기로, 그 시기와 경위는 자료마다 달라 신중하게 읽어야 합니다. 이후 세종 때 황보인의 청원으로 신원되어 시중에 추증되었습니다.

정도전·하륜과의 일화

차원부가 족보에 외손의 서속(庶屬) 사실을 그대로 적은 일이 정도전·하륜의 원한을 샀다는 이야기는 『차원부설원기』와 종친회 기록에 전합니다.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를 두고 '하륜 등이 보낸 자객'이라 서술하는 반면, 이 사이트의 기존 문절공파 카드는 '정도전이 보낸 군사'라고 소개하는 등 자료마다 가해자와 시기가 다르게 서술됩니다. 문중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해 병기합니다.

설원기와 신원

가문 측 기록에 따르면 세조 2년(1456) 왕명으로 박팽년 등 6인의 기문과 유신석학 48인의 응제시, 하위지의 서문으로 『차원부설원기』가 엮여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한편 대백과는 이미 세종 때 황보인의 청원으로 신원되었다고 적어, 두 기록의 선후를 정확히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전남 광양에는 1791년 『차문절공유사』를 간행하려고 만든 목판이 전합니다.

기림

합천 덕원서원은 차포온·차원부·차운혁 세 선조를 모신 서원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입니다. 순천의 운암사(雲巖祠)에도 제향되었다고 합니다. 후손은 문절공파로 이어집니다.

묘소

합천 덕원서원에 모셔졌고(차포온·차운혁과 함께), 순천 운암사 등에서 기려졌습니다. 묘소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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