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 화엄사 등 지리산 사찰을 지킨 경무관

| 생몰 | 1920 ~ 1958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연안 차씨 |
차일혁(1920~1958)은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대한민국 경찰관이 된 인물입니다. 김제군 금산면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호적상 차갑수, 족보상 차용철이었고 중국에서는 이강·차철 등의 이름을 썼다고 합니다. 1936년 홍성공업전수학교 2학년 때 조선인을 잡아가는 일본 형사를 때려 수배를 받고 학교를 떠났으며, 금강산 신계사에 피신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습니다.
1937년 상하이에서 스승 김지강(김성수)을 만나 항일운동에 뛰어들었고, 1940년 중국 중앙군관학교 황포분교를 졸업해 중국 중앙군 제32사단 포병 장교로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이후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했고 태항산 일대에서 중국 팔로군과 함께 작전을 폈다고 합니다. 1945년 광복 뒤 귀국해 전라북도 경찰에서 일했으며, 6·25 전쟁 때에는 가마골 탈환 작전, 이현상의 남부군 토벌 등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오늘날 널리 기억되는 이유는 1951년 5월 빨치산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사찰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고도 화엄사 대웅전 등의 문짝만 뜯어 태워 사찰을 지킨 일입니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는 말이 그가 한 말로 전합니다. 1958년 공주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중 38세에 별세했으며, 2008년 문화재청 감사장과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1951년 5월 회의에서 빨치산 근거지가 될 만한 사찰을 불태우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차일혁은 8사단 대대장에게 대웅전 등의 문짝만 떼어 불태우는 방법을 제안했고, 천은사·쌍계사·선운사 같은 사찰도 되도록 피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징계와 감봉을 받았습니다.
1953년 9월 지리산 빗점골에서 이현상이 숨진 뒤 시신은 하동 쌍계사로 옮겨졌고, 가족들이 인수를 거부하자 차일혁이 주변의 반대에도 승려를 불러 불교식으로 화장해 섬진강에 유골을 뿌렸다고 전합니다. 이 일로 상부의 질책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2008년 문화재청 감사장과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 추서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곰나루에서 가족과 물놀이를 하다 생긴 일로 전하지만 일부 자료는 다른 설도 소개합니다. 독립유공자 서훈 여부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해 별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화엄사에 공적비가 세워져 있고 2023년부터 추모다례재가 열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