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을 호종한 공으로 정승에 오른 채홍철의 아들, 평강부원군
| 생몰 | 1299 ~ 1358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평강 채씨 |
채하중(1299~1358)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채홍철의 아들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몽골식 이름이 하라티무르(哈刺帖木兒)라고 적고, 생년을 1299년으로 소개하며, 위키백과 평강 채씨 항목은 출생 연도를 확인하지 않고 ?~1358로 적습니다. 따라서 생년은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충숙왕 때인 1316년 호군이 되었고, 원나라에서 심양왕 왕고를 고려 왕으로 세우려는 움직임에 가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적의 난 때 충혜왕을 호종한 공으로 1342년 문하시중 겸 정승에 올라 1등공신이 되었고, 이 해부터 이듬해까지 충혜왕을 대신해 잠시 정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한 뒤에는 우정승을 지내고 이제현 등과 함께 서연관이 되었으며, 1354년 평강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1356년(공민왕 5)에는 순천으로 유배되었고, 이듬해 승려 달선의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1358년 옥중에서 목숨을 끊었으며 시신이 효수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은 한국어 위키백과를 따른 것이며 다른 자료에서 교차 확인하지는 못했으므로, 평가는 자료에 따라 엇갈립니다.
채하중은 원나라와 고려를 오가는 관료의 하나였고, 몽골식 이름을 가졌다고 합니다. 1316년 호군이 된 뒤 심양왕 옹립 움직임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정치 상황의 복잡함을 보여 줍니다.
조적의 난 때 충혜왕을 호종한 공으로 1342년 정승이 되고 1등공신이 되었으며, 1344년에는 우정승으로 서연관을 겸했습니다. 1354년에는 평강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1356년 순천으로 유배되었고 1358년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하나, 이 내용은 한 자료를 따른 것이어서 단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채홍철이 순천군에 봉해진 것과 묘소가 순천에 있다고 전하는 점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옥중에서 사망한 뒤 효수되었다고 전합니다.
충혜왕을 호종한 공으로 1342년 정승에 오른 고려 후기 문신으로 채홍철의 아들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1299년으로 적고, 위키백과 평강 채씨 항목은 ?~1358로 적어 자료마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