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 때 사관의 붓을 지킨 일화로 알려진 호조판서, 호는 임진당
| 생몰 | 1490 ~ 156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평강 채씨 |
채세영(1490~156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강, 자는 영지(英之), 호는 임진당(任眞堂)입니다. 증조부는 면천군수 채효순, 조부는 사헌부 감찰 채담, 아버지는 돈녕부 첨정 채자연이며, 형으로 채세호와 채세걸이 있습니다. 채세걸은 1510년 문과에 급제해 이조참판과 삼도관찰사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1510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습니다. 1519년 춘추관 기사관으로 있을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사관의 붓을 지켜 일화를 남겼고, 그 일로 이후 4년간 소외되었다고 합니다. 1533년 세자시강원 문학·사헌부 집의·홍문관 직제학을 지냈고, 1537년 성균관 대사성, 1545년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550년 경상도관찰사와 호조참판으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1558년 한성부판윤, 1560년 의정부 우참찬을 거쳐 공조판서·호조판서, 의정부 좌우참찬 겸 지경연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의 의곡에 있습니다. 시호와 저서는 위키백과 문서에 나오지 않아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춘추관 기사관이던 채세영이 사관의 붓을 지켜 일화를 남겼고, 그 일로 4년간 소외되었다고 합니다. 일화의 자세한 내용은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사성,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우참찬을 거쳐 공조판서·호조판서, 좌우참찬 겸 지경연에 올랐습니다. 1550년에는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형 채세걸과 함께 평강 채씨의 조선 전기 현달을 이끈 인물로, 뒷날 채유후와 채제공으로 이어지는 문신 가문의 바탕이 되었다고 평가됩니다. 다만 이들과의 직접 계보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광주 의곡(義谷)에 있다고 합니다.
아들 채계흥과 채윤흥, 딸(신효변의 아내)을 두었다고 하나 위키백과에 부인 측 가계가 두 가지로 표기되어 정확한 관계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중종~명종 때 호조판서·좌우참찬을 지낸 문신으로 호는 임진당입니다.
경기도 광주 의곡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