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총애를 받은 시문·글씨의 대가, 호는 희암
| 생몰 | 1669 ~ 1731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평강 채씨 |
채팽윤(1669~173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강, 자는 중기(仲耆), 호는 희암(希菴)과 은와(恩窩)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아버지는 현감 채시상(蔡時祥)입니다. 기사환국이 일어난 1689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독서당에 뽑혔다는 설명이 있으나, 이 초안에서는 급제 연도를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문과 글씨로 이름이 높아 숙종이 그의 시재를 높이 평가해 어사주와 호피를 내렸다고 하며, 숙종에게 올린 응제시문 13편을 모은 『응제시첩』이 전합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중창비와 사적비의 비문을 짓고 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문집으로 『희암집』(목판본 29권)과 시선집 『소대풍요』가 있으며, 『희암집』 간행은 채제공이 주도했다고 합니다.
채제공과의 관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아버지 채시상이 채제공의 증조부로 전하므로 채팽윤은 종조부가 되며, 실제로 종조부이자 스승으로 소개한 글이 있습니다. 반면 증조부로 적은 글도 있어 정확한 촌수는 확정하지 않습니다. 또 채유후의 『호주집』에 발문을 썼습니다.
숙종은 채팽윤의 시재를 높이 평가해 어사주와 호피를 내렸고, 채팽윤이 올린 응제시문 13편이 『응제시첩』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해남 대흥사 중창비와 사적비의 비문을 지었고 글씨도 썼다는 기록이 있어, 문장뿐 아니라 글씨로도 이름이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희암집』은 29권 목판본이 있고, 필사본 『폐추』에는 목판본에 없는 작품이 더 많다고 2023년 수원화성박물관 학술대회에서 소개되었습니다. 간행은 채제공이 주도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숙종의 총애를 받은 시문·글씨의 대가로 호는 희암이며 『희암집』이 전합니다.
채제공의 종조부이자 스승으로 소개되지만 증조부로 적은 글도 있어 자료가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