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의 6대손, 『보한집』을 지은 고려 후기 문신·문장가(시호 문청)
| 생몰 | 1188 ~ 1260 |
| 시대 | 고려 |
| 본관 | 해주 최씨 |
최자(崔滋, 1188~1260)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주이며 최충의 6대손입니다. 처음 이름은 종유(宗裕)·안(安),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산수(東山叟), 시호는 문청(文淸)입니다.
강종 때 문과에 급제해 상주사록으로 선정을 베풀었고 국학학유를 거쳤으며, 최이(최우)의 신임을 받던 이규보의 추천으로 문한을 맡았습니다. 고종 때 정언, 안찰사를 지냈고 1250년에는 몽골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256년 중서평장사 수태사, 1258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가 되었습니다.
문학에 뛰어나 『속파한집』(『보한집』)을 비롯해 『가집』 10권, 『최문충공가집』, 『삼도부』 등을 남겼다고 전합니다. 한편 최씨 무신정권과 가까웠고 경학보다 사장에 힘썼다는 평이 있어, 절조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함께 소개됩니다.
강종 때 급제한 뒤 상주사록으로 이름을 얻었고, 이규보의 추천으로 문한을 맡을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후 고종 때 정언, 안찰사(충청·전라), 국자대사성, 한림학사승지, 추밀부사, 지공거 등을 두루 지냈습니다.
『속파한집』 3권(『보한집』)은 문학의 본질과 문인의 자질, 창작의 어려움 등을 분석한 시화집으로 소개됩니다. 그 밖에 『가집』 10권, 『삼도부』 등이 전한다고 합니다.
『고려사』는 그가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어눌하되 겉으로 드러나기를 힘쓰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한편 최충헌의 인척이라 정략 가문이라는 비난이 있었고, 후세에 시호의 '청(淸)'을 '탁(濁)'으로 바꾸라는 주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1257년에는 강화도 방어가 어렵다며 항복을 권했다고 전합니다.
아들 최유후·최유비·최유엄. 최충헌의 인척으로 소개됩니다.
최충의 6대손으로 『보한집』(『속파한집』)을 지은 고려 후기 문신입니다.
시호는 문청, 호는 동산수입니다.
문학적 성취와 함께 최씨 무신정권과의 관계, 절조 문제가 거론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