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임시정부 · 독립장(1990)
| 생몰 | 1892 ~ 1963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해주 최씨 |
최동오(崔東旿, 1892~1963)의 호는 의산(義山)이며 본관은 해주입니다. 천도교인으로 3·1운동에 참여한 뒤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내무부 지방국장, 정의부 활동, 화성의숙 숙장, 조선혁명당·민족혁명당, 임시의정원 부의장, 임시정부 법무부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입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1919년 만세운동 후 망명하여 의주군 조사원·내무부 참사를 거쳐 1920년 내무부 지방국장에 임명되었고, 안창호를 도와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습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하다 임정을 이탈하기도 했습니다.
광복 후 1948년 4월 평양 남북연석회의에 남측 대표로 참석해 옛 제자인 김일성과 재회하였고, 195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체포되어 수감 중 전쟁이 발발하자 사돈 유동열과 함께 북한으로 납북되었습니다. 아들 최덕신은 독립운동가 유동열의 딸 류미영과 혼인했습니다.
천도교인으로 3·1운동에 참여한 뒤 상해로 망명했습니다. 의주군 조사원, 내무부 참사를 거쳐 1920년 내무부 지방국장에 임명되었고 안창호를 도와 선전 활동에 힘썼습니다.
정의부 활동을 하며 만주 화성의숙 숙장을 지냈고, 이 학교에 김일성이 다녔다고 전합니다. 조선혁명당·민족혁명당을 거쳐 임시의정원 부의장과 임시정부 법무부장을 지냈습니다.
1948년 4월 평양 남북연석회의에 남측 대표로 참석했고, 1950년 선거 출마 후 체포·수감 중 6·25가 발발해 납북되었습니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전합니다.
1990년 독립장을 받았으며, 자세한 공적은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전합니다.
아들 최덕신은 육군 중장·외무부 장관·천도교 교령을 지냈고, 독립운동가 유동열의 딸 류미영과 혼인했습니다.
천도교인 출신으로 임시정부 법무부장 등을 지낸 해주 최씨 독립운동가입니다.
외무부 장관과 천도교 교령을 지낸 최덕신입니다.
1990년 독립장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