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오른 산악인, 엄홍길휴먼재단 이사장

| 생몰 | 1960 |
| 시대 | 현대 |
| 본관 | 영월 엄씨 |
엄홍길(1960년생)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오른 산악인으로, 위키백과 본문에는 본관이 따로 없고 분류에 '영월 엄씨'가 있으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후손이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직계가 아니라 복야공파 퇴휴당공계의 방계 후손이라고 설명합니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체육학을 공부했으며, 해군 특수부대 UDT 출신으로 소개됩니다.
198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은 실패했고,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2001년 시샤팡마 등정으로 14좌를 모두 완등했는데 한국에서는 박영석에 이어 두 번째, 세계에서는 아홉 번째라고 합니다. 2004년 위성봉 얄룽캉(8,505m)에 올랐고, 2007년 5월 31일 로체샤르 남벽으로 '세계 최초 16좌 완등'을 기록했습니다. 로체샤르는 2003년 정상 150m 앞에서 눈사태로 동료 두 명을 잃는 등 여러 번 실패한 끝에 오른 것입니다.
2005년 에베레스트에서 숨진 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휴먼 원정대를 이끌어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았으나 운구하지 못하고 돌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엄홍길휴먼재단을 통해 네팔 오지에 휴먼스쿨과 병원 등을 세웠고, 2020년 만해대상 실천부문 대상 등을 받았습니다. '16좌'는 한국에서만 쓰는 표현이며 해외 산악 매체는 8,000m급을 14좌로 본다는 비판과, 1993년 시샤팡마 등정이 국제 데이터베이스에서 공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함께 소개됩니다.
로체샤르는 2001년 첫 시도가 실패했고 2003년 정상 150m 앞에서 눈사태가 나 동료 두 명을 잃었으며 2006년에도 실패한 끝에 2007년 네 번째 도전에서 올랐습니다. 2005년 휴먼 원정대는 에베레스트에서 숨진 박무택·백준호·장민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꾸린 팀으로, 박무택 대원의 시신만 발견해 돌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긍정적으로는 14좌 완등과 네팔 교육·구호 활동이 소개되고, 본인은 산을 '정복'이 아니라 정상을 '빌리는 것'이라 표현했다고 합니다. 논란으로는 16좌 표기와 시샤팡마 기록이 있어, 이 글은 양쪽 서술을 함께 적습니다.
위키백과는 후손이라고 하고 나무위키는 직계가 아닌 방계(복야공파 퇴휴당공계) 후손이라고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