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金東元

105인 사건에 연루된 평양의 교육·실업가,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냈으나 일제 말기 친일 행적이 지적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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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84 ~ 1951
시대근현대
본관전주 김씨

생애 약력

김동원(金東元, 1884~1951)은 1884년 2월 1일 평양에서 태어난 애국계몽운동가이자 교육인·사업가·정치인으로, 본관은 전주입니다. 평양의 대부호 김대윤의 장남이며 소설가 김동인의 이복형입니다. 어려서 한문을 배우고 1900년 평양외국어학교 일어과에 들어가 1903년 졸업했으며, 조교수로 일하다 1905년 일본에 유학해 1906년 메이지대학 법과 전문부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중퇴했습니다. 일본 유학 중에는 태극학회와 대한흥학회에서 활동했고, 귀국해서는 평양 숭덕학교와 대성학교에서 일어 교사로 지냈습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조작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912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받았으나 항고하여 1913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이후 평양에서 장작·숯·목재와 직물을 파는 사업을 하면서, 1920년대에는 조만식 등과 함께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고 평양 YMCA 창립에 관여했으며 대동법률강습소를 세웠습니다. 흥사단 계열의 동우구락부와 수양동우회에서 활동했고, 여러 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이사로도 활동했습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39년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일제에 협력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위키백과와 나무위키는 전합니다. 항공기 헌납 운동과 학병 권유 활동에 참여하고 평양상공회의소 회두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경제·지역유력자 부문으로 포함되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평양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평안남도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가 월남했고, 한국민주당에 참여했습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용산구에 당선되어 5월 31일 국회 부의장이 되었고 1950년 5월까지 재임했습니다. 6·25 전쟁 중 납북되어 1951년 북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사망 시기는 3월과 10월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평가가 갈리는 이유

김동원은 신민회·흥사단 계열의 민족운동과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했지만,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의 행적 때문에 친일 협력자로 평가받습니다. 신민회 가입 여부는 자료에 따라 다르게 서술되므로 이 문서는 105인 사건 연루 사실만 적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현재 등재되어 있다고 전하는 자료와 '수록 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고만 적은 자료가 있어, 정확한 등재 여부는 사전을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묘소

북한의 재북인사릉에 있다고 전해집니다.

후손

이복동생이 소설가 김동인입니다. 본관 전주 김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김동원 자주 묻는 질문

김동원은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나요?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형을 받았다가 1913년 복심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김동인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아버지가 같은 이복형제 사이로, 김동원이 형입니다.

제헌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1948년 5월 31일 국회 부의장에 선출되어 1950년 5월까지 재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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