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를 쓴 시인이자 중동학교 교사 시절 민족 사상 고취로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
| 생몰 | 1905 ~ 1977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전주 김씨 |
김광섭(金珖燮, 1905~1977)은 1905년 9월 22일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이산(怡山)입니다. 1923년 경성 중동고보를 졸업했고 1927년 도쿄로 유학해 1933년 와세다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27년 시 「모기장」을 발표하며 창작을 시작했고, 1931년부터 중동고보 영어 교사로 일하며 《문예월간》 동인으로 「고독」「푸른 하늘의 전락」「고민의 풍토」 등을 발표했습니다. 1933년에는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했습니다. 1932년부터 1938년까지의 작품에는 지식인의 고뇌와 민족 의식이 짙게 나타난다고 평가됩니다.
1941년 12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6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석방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자전 문집 『나의 옥중기』에 담겼습니다. 정부는 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1955년부터 1956년까지 대통령 비서실 공보국장 등을 지냈고, 1961년부터 1962년까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었습니다.
1965년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창작을 이어 갔고, 이 시기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는 도시 개발로 삶터를 잃은 비둘기를 통해 산업화의 그늘을 노래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시집으로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이삭을 주울 때』(1965),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사회시집』(1971), 『김광섭시전집』(1974), 『겨울날』(1975)이 있습니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1975년 시문학 분야에서 은퇴를 선언한 뒤 1977년 5월 23일 뇌졸중으로 서울 여의도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 이순학은 1970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9년에는 그를 기리는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졌고, 2008년 한국사 시민강좌 특집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에 문화·종교·언론 부문 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성북동 비둘기」는 개발로 삶터를 잃은 비둘기를 통해 산업화의 그늘을 그린 시로, 같은 이름의 시집(1969)의 표제작입니다.
1989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는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졌고, 문학과지성사가 주관합니다.
부인은 이순학입니다. 본관 전주 김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와 그 표제작 「성북동 비둘기」입니다.
1941년 중동학교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6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1977년 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