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임시정부 · 임시정부
| 생몰 | 1894 ~ 1950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김해 김씨 |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조부에게 한학을 배운 뒤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였습니다. 1919년 2월 도쿄 유학생 신분으로 서춘·최팔용 등과 함께 2·8독립선언을 주동해 동지를 규합하고 선언문을 기초·배포하는 데 앞장섰다가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났습니다.
이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고, 1919년 9월에는 내무총장 안창호가 조직한 사료편찬회에 이광수·김두봉 등과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김구·윤현진 등과 의용단을 조직해 단장을 맡아 국내외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다 1920년 9월 만주 봉천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 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광복 후에는 한국독립당 중앙위원으로 우익 정치활동과 반탁운동에 참여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1982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