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를 세운 교육자이자 가곡 1,500여 곡을 남긴 작곡가·언론인

| 생몰 | 1914 ~ 2008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전주 김씨 |
김연준(金連俊, 1914~2008)은 1914년 2월 20일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난 작곡가·언론인·교육자로, 본관은 전주이고 호는 백남(白南)이며 침례회 신자였습니다. 명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만지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고, 경성고보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연전 음악부에서 현제명의 지도를 받으며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맡았고, 1936년 제15회 연전추기음악회에서 제2바이올린으로 출연했습니다. 1937년에는 국내 최초의 바리톤 독주회를 열었습니다.
1939년 7월 기술보국(技術保國)을 내걸고 동아공과학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양대학교의 출발점입니다. 해방 뒤 1947년 재단법인 한양학원을 세워 한양야간공업대학으로 개편했고, 1948년 7월 우리나라 최초의 4년제 사립 공과대학인 한양공과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초대 학장이 되었습니다. 1959년 종합대학으로 개편하며 현재의 교명이 되었고, 그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 15년간 한양대 총장을 지낸 뒤 2007년까지 학교법인 한양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했습니다.
교육 말고도 대한체육회 회장 등을 맡았고 대한일보와 기독교신문을 창간했으며,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회장과 북한인권개선운동본부 총재를 지냈습니다. 작곡가로서 24차례의 작곡발표회를 열었고 「청산에 살리라」 등 가곡을 수없이 지어 『김연준 가곡 1,500곡집』과 『성가곡집』을 냈으며, 저서로 『백남문집』과 『사랑의 실천』이 있습니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1998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고 1979년 독일 튀빙겐대학교 개교 500주년 기념 음악대상(작곡부문)을 수상했으며, 여러 나라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8년 1월 7일 세상을 떠났고, 2013년 그의 정신을 기리는 백남상이 공학·음악·인권봉사 세 분야로 제정되었습니다.
1939년 7월 설립된 동아공과학원이 한양야간공업대학(1947), 한양공과대학(1948)을 거쳐 1959년 종합대학 한양대학교가 되었습니다. 한양공과대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4년제 사립 공과대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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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동아공과학원을 세워 한양대학교의 기초를 닦았고, 총장과 이사장을 지냈으며 가곡도 많이 작곡했습니다.
1959년부터 1973년까지 15년간입니다.
2013년 그의 정신을 기려 공학·음악·인권봉사 분야에 수여하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