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문신, 호 송당, 시호 제평
| 생몰 | 1390 ~ 1456 |
| 시대 | 조선 초기 |
| 본관 | 예천 권씨 |
권맹손(權孟孫, 1390~1456)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예천이고 자는 효백(孝伯), 호는 송당(松堂)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증조부는 권흔섬, 할아버지는 권군보, 아버지는 목사 권상이며 어머니는 임경종의 딸입니다. 예천 권씨를 조선 시대의 문벌로 일으킨 인물로 꼽히며, 아우 권유손의 손자들이 훗날 '오복문'으로 불린 형제들입니다. 시호는 제평(齊平)입니다.
1408년(태종 8)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고, 1427년(세종 9)에도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했다고 합니다. 검열로 출발해 1418년 헌납이 되었고, 1419년에는 병조정랑으로 경차관의 임무를 맡아 여러 장수와 선박의 운용을 감독했습니다. 1421년 사헌부 장령에 올랐고, 1422년 강원도와 평안도에 기근이 들자 의정부 사인으로 강원도에 파견되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했습니다. 1425년에는 강원도 찰방으로 나갔습니다.
세종 후반에는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1430년 우사간, 이듬해 동부대언, 1434년 좌승지, 1437년 형조참의, 1441년 중추원 부사, 1442년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고, 이어 동지중추원사·한성부윤·공조참판 등을 역임했다고 위키백과는 적습니다. 세종 때 아악 정리 사업에 힘써 음악가 박연의 의견을 따라 악장 사업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도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자료는 함길도 관찰사, 공조판서,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장가라고도 소개하는데, 직함과 시기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이 글에서는 위키백과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는 이조판서로서 의창 제도의 근본적 모순과 운영의 불합리를 짚고 관리들의 부정과 비리를 엄격히 척결하자고 건의했습니다. 그 뒤 중추원사를 지냈으며 단종의 섭정 격이던 좌의정 김종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145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합니다. 후손이 입은 큰 시련인 무오사화(1498) 이후에도 그의 이름은 예천의 병암정 별묘에 권오기·권오복 등과 함께 모셔져 집안의 상징으로 기려집니다.
1422년 강원도와 평안도에 기근이 들었을 때 의정부 사인으로 강원도에 내려가 굶는 백성을 구휼했고, 1442년에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습니다. 위키백과의 이력은 중앙의 언관직과 지방 구휼·감독 임무를 번갈아 맡은 흐름을 보여 줍니다.
문종 즉위년인 1450년 이조판서로서 의창(義倉) 제도의 모순과 운영의 불합리를 지적하고 관리의 부정·부패를 엄격히 다스릴 것을 건의했다고 합니다. 구휼 현장을 직접 겪은 경험이 이런 건의의 배경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는 사료에서 직접 확인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우 권유손의 둘째 아들 권선이 다섯 아들을 두어 오복문을 이루었습니다.
예천(醴泉) 권씨이며 중시조 권섬의 증손입니다.
제평(齊平)입니다.
위키백과 기준으로 이조판서와 중추원사를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