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의 문인으로 무오사화 때 처형된 문신, 호 수헌, 시호 충경
| 생몰 | 1467 ~ 1498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예천 권씨 |
권오복(權五福, 1467~149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예천, 자는 향지(嚮之), 호는 수헌(睡軒)입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금석문 정보에 따르면 증조부는 권상, 할아버지는 권유손, 아버지는 권선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 이계전의 딸입니다. 예천군 북쪽 약 20리의 유전촌(柳田村)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오복문 다섯 형제 가운데 셋째로 전해집니다. 이 인물은 안동 권씨의 같은 이름 인물과 구별해야 하는데, 여기서 다루는 권오복은 예천 권씨입니다.
1486년(성종 17) 생원시에 입격하고 같은 해 문과 병과에 급제했습니다. 예문관 관원으로 뽑혀 사관의 직을 맡았고, 병조 낭청을 거쳐 홍문관으로 옮겼으며 관동 어사로 나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김일손과 어울렸습니다. 1496년 부모 봉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해 야성(지금의 영덕)의 수령에 보임되었습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에서 붙잡혀 올라와 김일손, 권경유 등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나이는 서른둘이었습니다. 비문은 그가 스승 김종직, 벗 김일손과 어울린 탓에 시기를 받았다고 적습니다. 아버지 권선은 광양으로 귀양을 갔고 형제들도 큰 화를 입었습니다. 권오복은 아내인 종실 오천부정 이사종의 딸과의 사이에 아들이 없고 딸 둘을 두었다고 합니다.
사후 시호는 충경(忠敬)이며 예천 봉산서원과 향현사에 모셔졌습니다. 1585년 종손 권문해가 달성부사로 있을 때 문집 『수헌집』을 간행했고, 『수헌문집』·『수헌시집』이 전합니다. 묘소는 실전되어 찾을 수 없었으므로 후손들이 옛 집터를 정비해 비를 세우고 제단을 마련했으니, 1891년에 세운 권오복 유허비가 그것입니다. 비문은 유치명이 짓고 김흥락이 썼으며, 종후손 진팔·진호 등이 건립을 맡았다고 합니다.
무오사화는 김일손이 사초에 올린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문제 되어 일어난 사화입니다. 유자광과 이극돈 등이 주도했다는 점이 유허비 비문에도 언급되며, 권오복은 김일손과 함께 가장 먼저 극형을 당한 인물의 하나로 기록됩니다. 사화의 일반적 경과는 우리역사넷 등의 자료를 참고하되, 그의 구체적 혐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를 잃은 뒤 후손들은 옛 집터에 비를 세웠습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이 비를 지붕 모양 머릿돌과 네모꼴 받침돌을 갖춘 4면 비로, 비지정 유산으로 소개합니다. 비문에는 문집을 엮은 경위와 세계, 자손록도 함께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묘소는 실전되어, 옛 집터(예천읍)에 1891년 세운 유허비와 제단이 있습니다.
아들은 없고 딸 둘을 두었다고 비문은 전합니다. 형제로 권오행·권오기·권오륜(오윤)·권오상이 있습니다.
예천 권씨이며 권선의 아들입니다. 같은 이름의 안동 권씨 인물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김일손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수헌집』(수헌문집·수헌시집)이며 1585년 권문해가 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