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의 막내아들, 권문해의 조부, 초간종택을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예천 권씨 |
권오상(權五常)은 권선의 다섯 아들 가운데 막내로 전해지며, 『대동운부군옥』을 쓴 권문해의 할아버지입니다. 한자는 위키백과에서 權五常으로, 문화재 해설에서는 權五相으로 쓰여 표기가 갈립니다. 오복문 형제의 일원으로 '모두 벼슬에 올랐다'고 하지만 그의 구체적 관직과 생몰년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오늘날 널리 알려진 것은 예천 용문면 죽림리의 초간종택 때문입니다. 경기일보와 대구일보 해설은 종택과 별당을 초간 권문해의 조부 권오상이 지었다고 설명하며, 시기를 15세기 말로 보는 쪽과 16세기 말로 보는 쪽이 있습니다. 한 문화 해설은 조부 권오상이 창건했다는 설과 아버지 권지가 처음 자리 잡았다는 기록이 함께 전한다고 밝혀, 건립 주체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종택의 사랑채인 별당은 1967년 6월 23일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5량가 건물로 사방에 쪽마루를 달고 계자난간을 둘렀으며, 남쪽 2칸은 온돌방, 나머지는 대청입니다. 대청 대들보 위 눈썹반자에는 칼과 창, 활 같은 무구를 두어 전란에 대비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조선 전기 누각형 접객 건물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드문 사례로 평가됩니다. 종택 전체는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형 권오복이 무오사화로 처형되고 아버지가 귀양을 가는 시련 속에서도, 죽림리의 터전은 손자 권문해 대에 이르러 학문의 중심으로 다시 꽃피었습니다. 다만 권오상 본인의 생애는 기록이 드물어 '집을 지은 조부'라는 기억으로 주로 남아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채우려고 추측을 덧붙이지 않고, 자료가 확인될 때까지 비워 둡니다.
안채는 2중 기단 위에 오량가 양통집으로 앞면 5칸이며, 북쪽에 사당, 동남쪽에 목판을 보관한 백승각이 있다고 경기일보 해설은 전합니다. 안채와 행랑, 날개채가 이어져 전체가 ㅁ자 평면을 이룹니다. 서향 집으로 서쪽 주산을 등지고 동쪽 들판을 바라봅니다.
15세기 말 건립설, 1589년 건립으로 적은 연혁표, 임진왜란 이전이라는 막연한 설명이 공존합니다. 이 글은 어느 하나를 확정하지 않고 모두 소개해 둡니다.
손자가 권문해이며, 아들로 권지가 전해집니다.
『대동운부군옥』을 쓴 초간 권문해의 할아버지입니다.
1967년 6월 23일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위키백과는 權五常, 일부 문화재 해설은 權五相으로 적어 표기가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