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씨에서 권씨로 성을 바꾼 예천 권씨의 중시조, 예빈경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예천 권씨 |
권섬(權暹)은 예천 권씨의 중시조로 모셔지는 고려 후기의 인물입니다. 원래 이름은 흔섬(昕暹)으로, 예천 지방의 토착 호족이던 흔(昕)씨의 후손이었고 예빈경(禮賓卿)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에 소개된 예천 권씨 세계에 따르면 흔적신(昕廸臣)을 시조로 하여 흔득규, 흔수창, 흔경, 흔승단으로 이어지는 집안이며, 흔섬은 세보에서 6세로 적힌 인물입니다. 아버지 흔승단은 봉익대부 판위위시사에 추봉되었다고 하며, 예천의 흔씨는 대대로 호장직을 세습한 고을의 대표적 토성이었습니다.
성이 바뀐 사연은 이렇게 전해집니다. 흔섬이 살던 시기에 고려 제29대 충목왕(재위 1344~1348)이 즉위했는데, 왕의 이름이 흔(昕)이어서 같은 글자를 쓰는 성을 그대로 두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이에 흔섬은 외가 쪽 성인 권(權)을 따라 이름을 권섬으로 고쳤고, 세거지인 예천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족보 사이트와 일부 자료는 외할아버지를 안동 권씨 판위위시사 권백서로 소개하며, 흔씨 1세와 3세의 배우자도 권씨였다는 설명이 위키백과에 나옵니다.
다만 개성(改姓)의 시기는 자료마다 달라 한 가지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예천권씨세보』의 무진보는 충목왕 때라고 적는 반면, 『고려사』에는 명종 때 예천의 흔씨에게 권씨 성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어, 위키백과는 명종 때 권씨를 받았다가 흔씨로 되돌아간 뒤 충목왕 때 다시 고쳤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한 족보 사이트는 명종과 충목왕 사이에 150여 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권섬은 확정된 연대보다는 성씨 변천의 상징적 인물로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권섬의 자손은 아들 권군보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어졌고, 권군보의 손자가 세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권맹손입니다. 안동 권씨와 같은 권씨이지만 예천 권씨는 부계로는 다른 뿌리라서, 같은 성에 본관만 다른 동성이본(同姓異本)으로 구분됩니다. 안동 권씨 쪽 자료도 이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두 집안의 족보를 견주어 보면 이름과 부자 관계가 겹치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무오사화 이후 일부 후손이 안동 권씨로 편입된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예천 권씨 세계에 따르면 시조 흔적신은 보승별장이었고, 아들 흔득규는 호장, 손자 흔수창은 정조호장이었다고 합니다. 흔수창은 검교태자첨사 권정공의 딸과 혼인해 성균진사 흔경을 낳았고, 흔경은 은풍 오씨 오돈제의 딸과 혼인해 흔승단을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예천 흔씨는 고을의 아전 우두머리를 이어 온 토성이었고, 고려 초기부터 예천 일대에 흔씨가 살았음을 『고려사절요』와 금석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위키백과는 설명합니다.
개성의 시기는 자료에 따라 충목왕 때와 명종 때로 갈립니다. 충목왕의 이름이 흔(昕)이었다는 점이 피휘 설명의 근거이지만, 명종의 처음 이름도 같은 글자였다는 지적이 있어 한 자료는 두 임금 사이의 150여 년 차이를 언급합니다. 이 글에서는 어느 한쪽을 확정하지 않고 두 설을 함께 적어 둡니다.
아들 권군보를 통해 손자 권맹손·권유손 형제로 이어지고, 권유손의 아들 권선이 다섯 아들(오복문)을 두었다고 전합니다.
원래 흔섬(昕暹)이었다가 권씨로 성을 바꾼 예천 권씨의 중시조로 모셔지는 고려 후기 인물입니다.
아닙니다. 같은 권씨이지만 부계 뿌리가 다른 동성이본(同姓異本)으로 설명됩니다.
충목왕 때라는 설과 명종 때 사성(賜姓)이 있었다는 기록이 엇갈려 확정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