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을 지은 어의, 호는 구암, 양평군

| 생몰 | 1539 ~ 161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양천 허씨 |
허준(1539~1615)은 조선 중기의 의관이자 의학자로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구암입니다. 서울 강서 일대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출생 연도는 1537년·1539년·1546년 등 설이 갈리지만 지금은 1539년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친은 용천부사를 지낸 허론으로 전하는데(허논·허륜 등으로도 적힙니다), 서출이었다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어 신분에 관한 기록은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1569년 홍담과 유희춘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가 의관이 되었고, 1572~1573년 무렵 내의원첨정을 거쳐 내의원정에 올랐다고 합니다. 1590년 신성군을 치료한 공으로 당상관에 올랐으나 삼사의 반대가 이어졌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공신에 올랐습니다. 1596년에는 광해군의 병을 고쳐 정2품 자헌대부로 올랐으며, 1600년에는 내의원의 최선임자인 수의가 되었고, 1604년 호성공신 3등으로 양평군에 봉해졌습니다.
1607년 선조의 병이 낫지 않자 책임론이 일었으나 선조가 무마했다고 하고, 1608년 선조가 승하한 뒤에는 파직되어 유배되었습니다(유배지는 공암 또는 울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유배 중에도 『동의보감』 집필을 이어갔다고 하며, 1610년 무렵 완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1609~1610년 서술이 갈립니다). 1611년 귀양이 풀려 내의원에 복직했고, 1615년에 세상을 떠난 뒤 보국숭록대부 양평부원군으로 추증되었습니다.
그의 저서는 『동의보감』 외에 『벽역신방』·『신찬벽온방』, 한글 의서인 『언해구급방』·『언해두창집요』·『언해태산집요』, 『맥결집성』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고, 조선뿐 아니라 일본과 청나라에서도 간행되었다고 합니다. 선조는 여러 의서에 통달해 약 쓰는 데 노련하다고 평했고, 중국에서는 '천하의 보배'를 만든 인물로 일컬었다고 전합니다.
양천허씨대종회 자료는 허준을 판도좌랑공파 아래 영월공파 계통으로 소개합니다. 허난설헌의 11촌 숙부뻘로 소개하는 자료가 있고, 위키백과의 허균 항목은 허준을 먼 친족으로 적지만 정확한 촌수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서출설은 논쟁이 있으므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선조가 승하한 1608년 파직된 허준은 유배 중에도 집필을 이어 1610년 무렵 『동의보감』을 마쳤다고 합니다. 임상 의학을 한데 모은 백과사전식 의서로, 한글 의서도 여러 권 남겼습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허준박물관과 구암공원, 허준로가 있습니다. 전하는 실제 초상화는 없다고 하며, 흔히 보이는 초상은 후대에 그려진 것입니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의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다고 합니다. 1991년 발견되어 1992년 경기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선조 때 어의로 『동의보감』을 완성한 조선의 의학자로, 양평군에 봉해진 양천 허씨 인물입니다.
1610년 무렵 유배 중에 완성한 것으로 전하며, 자료에 따라 1609~1610년으로 서술이 갈립니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128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