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류 시인, 본명 초희, 『난설헌집』

| 생몰 | 1563 ~ 1589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양천 허씨 |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으로 본관은 양천,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 호는 난설헌입니다. 강릉 초당동에서 허엽과 강릉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오빠 허봉, 이복 오빠 허성, 동생 허균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아버지 허엽과 이달에게 시와 글을 배웠다고 합니다.
1577년 열다섯 살에 안동 김씨 김성립과 혼인했으나,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남편과의 불화로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이어 자녀와 아버지·어머니의 죽음, 형제의 유배 등 불행이 잇따랐고, 1589년 3월 한성에서 스물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불태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현존하는 시는 약 213수로 알려져 있으며, 신선 세계를 그리워하는 작품이 많고 자식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곡자」가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가사로는 「규원가」와 「봉선화가」가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데, 작자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그림으로 〈앙간비금도〉·〈묵조도〉·〈작약도〉 등이 언급됩니다.
작품은 동생 허균이 모아 보존했습니다. 1590년 무렵 초고가 만들어졌고, 1606년 명나라 사신을 통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었으며, 1607년(또는 1608년) 허균이 목판본으로 펴냈고,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고 합니다. 당대에는 고부 갈등 등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했으나 조선 후기에 작품성과 천재성이 재평가되었고, 현대에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시 약 213수 가운데 신선을 그리는 작품이 많고, 자식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곡자」가 대표작입니다.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시가 전해져 중국에서 간행되었고, 허균의 목판본(1607 또는 1608)과 1711년 일본판이 이어졌습니다. 2000년 무렵에는 명나라에서 간행된 『취사원창』이 새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양천허씨대종회 자료는 허엽과 그 자녀를 판도좌랑공파 아래 자산공파로 소개합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있다고 전합니다(1985년 현재 위치로 이전, 1986년 경기도 기념물 제90호로 지정). 일부 서술에는 하남시로 이장되었다는 내용도 있어 자료 간 차이가 있습니다. 강릉 초당동에는 생가터가 남아 있습니다.
허엽의 딸이자 허균의 누이로, 27세에 세상을 떠난 조선의 여류 시인입니다.
동생 허균이 작품을 모아 1606년 명나라 사신에게 전했고, 중국·조선·일본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아닙니다. 그가 그렸다고 전하는 〈앙간비금도〉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