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 許筬

이조판서, 1590년 통신사 서장관, 호는 악록·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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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48 ~ 1612
시대조선 중기
본관양천 허씨

생애 약력

허성(1548~161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 자는 공언, 호는 악록 또는 산전입니다. 허엽의 맏아들로 허봉·허균·허난설헌 남매와는 배다른 형제이고, 우성전의 처남입니다. 외가이자 생가가 있던 강릉에는 그를 기리는 시비가 있다고 합니다.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고, 세상을 떠난 뒤 의정부 좌찬성에 추서되었습니다. 1590년 조선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일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정사는 황윤길, 부사는 김성일이었으며, 허성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둘러싼 의견 대립 속에서 황윤길 쪽에 가까웠다고 전해집니다. 1591년 귀국 직후 탄핵을 받아 의금부로 압송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운 공으로 1604년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1614년에는 사후에 위성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에 대한 부정적 기록이 많지만, 『선조실록』 수정본은 이를 비판하며 그를 옹호했다고 소개됩니다. 문집으로 『악록집』이 전합니다.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소생인 동생들과 함께 '허씨 5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다만 그의 구체적인 관직 연보와 묘소는 이번에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590년 통신사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정사와 부사의 보고가 엇갈린 일은 유명하며, 허성의 입장에 관한 서술은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공신 녹훈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1604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올랐고, 사후 1614년 위성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묘소

묘소의 정확한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강릉에 시비가 있다고 합니다.

허성 자주 묻는 질문

허성은 누구인가요?

허엽의 맏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내고 1590년 통신사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문신입니다.

허균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형이며, 허균의 배다른 맏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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