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0년 일본에 통신사 정사로 다녀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보고한 문신, 호 우송당
| 생몰 | 1536 ~ 미상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장수 황씨 |
황윤길(黃允吉, 153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수이고 자는 길재, 호는 우송당(友松堂)이며 서인에 속했습니다. 세계일보 해설은 황희의 후손으로 소개합니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했고 벼슬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고 위키백과가 적지만, 다른 자료는 공조참판을 지냈다고 하여 최종 관직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1589년 9월 조정이 일본 파견을 결정하고, 1590년 3월 선조가 황윤길을 정사로 하는 통신사를 보냈습니다. 부사는 김성일, 서장관은 허성이었고, 일행은 1591년 1월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위키백과는 당질 황진도 일행으로 따라갔다고 전합니다.
귀국 후 황윤길은 일본이 침략해 올 것이라 보고했으나 김성일은 그럴 조짐이 없다고 보고했고, 조정은 후자의 말을 더 따랐다고 전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황윤길의 보고를 믿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합니다.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과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몰년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통신사의 보고가 둘로 갈린 일은 임진왜란 직전 조선의 대응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위키백과는 황윤길이 "앞으로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라 보고했고 김성일은 침략 조짐이 없다고 했으며, 조정이 김성일의 말을 더 따르면서 방비가 소홀해졌다고 적습니다. 다만 이 서술은 후대에 단순화된 면이 있어, 두 사람의 보고 내용과 당파적 배경을 함께 살피는 연구도 있습니다.
황윤길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으며 2009년 고양시 향토유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황윤길 묘' 문서가 따로 있습니다.
1589년 9월 조정이 통신사 파견을 결정했고, 1590년 3월 황윤길을 정사, 김성일을 부사, 허성을 서장관으로 하는 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일행은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났고, 1591년 1월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듬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행은 후지와라 세이카 같은 일본 승려와 교류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일본 방문 중에 보고 들은 것이 귀국 보고의 근거가 되었으나, 두 사람의 보고가 달랐던 이유는 당시 정치적 입장과 해석 차이 등으로 연구마다 설명이 다릅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2009년 고양시 향토유적 제55호 지정)
당질 황진이 무장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가계 상세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수 황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1590년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다녀와 침략 가능성을 보고한 장수 황씨 출신 문신입니다.
황윤길은 병화가 있을 것이라 했고 김성일은 침략 조짐이 없다고 보고했으며 조정은 후자를 더 따랐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