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한 洪鳳漢

영조 때 영의정,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정조의 외할아버지,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 초상
홍봉한 초상 · Public Domain (조선시대 초상, 저작자 미상 — Wikimedia Commons)
생몰1713 ~ 1778
시대조선 후기
본관풍산 홍씨

생애 약력

홍봉한(洪鳳漢, 1713~1778)은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 자는 익여(翼汝), 호는 익익재(翼翼齋), 시호는 익정(翼靖)입니다. 예조판서를 지내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된 홍현보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천 임씨입니다. 1744년(영조 20)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사관이 되었으며, 둘째 딸이 사도세자의 세자빈(혜경궁 홍씨)이 되면서 영조의 사돈이 되었습니다. 매부는 고구마를 들여온 조엄입니다. 이후 광주부윤·어영대장·대사헌, 병조·예조·호조·이조판서, 판의금부사, 평안도관찰사, 좌참찬 등을 거쳤습니다.

1761년 노론 정승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난 뒤 우의정에 발탁되었고 이어 좌의정·영의정을 지냈으며, 1768년 영의정에 다시 임명되었다가 1771년 영중추부사가 되었고 1772년 봉조하를 받았습니다. 1762년 임오년에 사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에는 영의정이었습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사직서를 냈다가 보름쯤 뒤 복직했고, 반대파는 사도세자의 비행을 감춘다고 비판했으며, 사도세자가 정신 질환의 고통을 편지로 알리며 도움을 호소했다고 전합니다. 『한중록』에는 1769년 세손의 기방 출입 소문을 딸의 부탁으로 수습한 일도 나옵니다.

홍봉한은 영조의 탕평책을 따른 탕평파의 우두머리로 꼽히며, 당쟁의 폐해와 인재 등용을 담은 시무 6조를 올려 국정 쇄신을 주장했습니다. 한편 노론 내부에서는 당론보다 임금의 뜻을 따랐다고 비판받았고, 정조 즉위 뒤에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탄핵이 여러 번 있었으나 정조는 외조부를 처벌할 뜻이 없었다고 합니다. 울릉도의 사적을 조사하게 하여 책을 엮게 했고, 정조는 그의 상소를 모아 『어정홍익정공주고』를 편찬하고 서문을 썼습니다. 이복동생 홍인한은 좌의정에 올랐으나 정조 즉위 직후 사사되었습니다. 딸이 혜경궁 홍씨이고 외손이 정조입니다. 묘소는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에 있고 고종 때 영풍부원군에 추봉되었습니다.

임오화변과 영의정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숨질 때 영의정이었습니다. 그의 역할에 대해서는 당시와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며, 위키백과는 그가 영조의 명을 받아 관여했다고 기술하는 한편 『한중록』 쪽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탕평과 시무 6조

탕평파의 우두머리로서 당쟁의 폐해와 인재 등용 문제를 다룬 시무 6조를 올렸습니다. 노론 안에서는 당론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정조의 외조부

정조는 즉위 뒤 외조부의 상소를 모아 문집 『어정홍익정공주고』를 만들고 서문을 지었습니다.

묘소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에 있습니다(1974년 묘비문이 세워짐).

후손

딸 혜경궁 홍씨, 외손 정조, 장남 홍낙인 등.

홍봉한 자주 묻는 질문

홍봉한은 누구인가요?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풍산 홍씨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자 정조의 외할아버지입니다.

어디에 묻혔나요?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입니다.

홍인한과의 관계는?

아버지가 같은 이복형제이며 홍인한이 동생입니다.

🌳 이 인물을 시조 혹은 시작인물로 두고 내 족보월드 트리 시작하기 ⬆️ 내가 그린 족보트리에 이 인물을 최상위로 넣기
풍산 홍씨 가문. 우리 집안 풍산 홍씨 가계도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그려보세요. 조상 확인은 제적등본 가이드 참고.

같은 풍산 홍씨 인물

홍이상선조 때 대사헌·대사성을 지낸 문신, 호는 모당, 풍산 홍씨 모당공계의 중시조홍주원선조의 딸 정명공주와 혼인한 부마, 영안위, 시호 문의홍만종『순오지』·『소화시평』·『해동이적』을 지은 문신·비평가, 호는 현묵자홍만선농서 『산림경제』를 지은 실학자·문신, 호는 유암홍만조여섯 도의 관찰사와 판돈녕부사를 지낸 남원공파의 문신, 호는 만퇴혜경궁 홍씨사도세자의 빈이자 정조의 어머니, 『한중록』의 저자, 추존 헌경의황후
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