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관 대제학·판중추부사를 지낸 학자·경세가, 호는 이계, 『이계집』 저자

| 생몰 | 1724 ~ 1802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풍산 홍씨 |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풍산, 초명은 양한(良漢), 자는 한사(漢師), 호는 이계(耳溪)입니다. 만년에 서울 우이동에 살아 이 호를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추증 좌찬성 홍진보, 어머니는 영의정 심수현의 딸 청송 심씨이며, 친가와 외가 모두 소론의 명망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외삼촌 심육에게 학문을 익혔는데 심육은 강화학파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1752년(영조 2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습니다.
어사·강동현감·경주부윤·홍주목사·황해감사를 지내며 지방 행정에 힘썼고, 중앙에서는 대사성·이조·공조·예조·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홍문관·예문관 제학, 양관 대제학을 역임했습니다. 1778년(정조 2) 함경도 경흥부사로 나간 일은 홍국영과의 마찰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1782년 동지부사로 청에 다녀와 수레와 벽돌 사용을 중심으로 한 '진육조소'를 올렸고, 1794년에는 동지정사로 아들 홍희준과 함께 다시 다녀와 기윤과 교유하며 문자학·금석학 정보를 얻었습니다. 최종 관직은 판중추부사였습니다.
저서로는 『이계집』·『이계외집』이 있고 경흥부사 시절 지방행정에 관한 소견을 정리한 『목민대방』, 북관 답사를 기록한 『북새기략』·『북새잡요』, 문자학 저술 『육서경위』, 시조를 한시로 옮긴 『청구단곡』 등이 있습니다. 경주부윤 때는 신라 금석문을 발견하고 1796년 문무대왕비 파편의 발문을 썼으며, 북관을 답사해 백두산정계비 이후 영토가 줄었다고 보아 실지 회복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폐사군 후주 지역에 읍을 두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서예 이론서 「필결」과 서사 한시 「임명대첩가」·「유민원」도 남겼습니다. 경세가이자 실학자로 평가되며, 풍산홍씨대종회는 『이계집』·『역상익』·『만물원시』·『격물해』 등을 가문의 대표 저술로 꼽습니다. 묘소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일봉산 중턱에 있습니다. 같은 풍산 홍씨인 홍낙성 등 노론 쪽 외척 계열과 달리 소론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1782년 동지부사로 청에 다녀와 수레와 벽돌 사용을 강조한 진육조소를 올렸고, 1794년 동지정사로 아들 홍희준과 다시 다녀왔습니다.
북관을 답사해 『북새기략』을 쓰고 실지 회복을 논했으며, 경주부윤 때는 신라 금석문을 발견했습니다.
『이계집』·『목민대방』·『육서경위』·『청구단곡』·「필결」 등이 있습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일봉산 중턱에 있습니다.
아들 홍희준(1761~1841)은 이조판서·한성부판윤을 지냈습니다.
이계 홍양호는 양관 대제학을 지낸 조선 후기 풍산 홍씨 학자·경세가입니다.
『이계집』·『목민대방』·『북새기략』·『육서경위』 등입니다.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일봉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