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원 黃景源

영조·정조 때 여러 차례 대제학을 지낸 문신·문장가, 호 강한유로, 시호 문경, 저서 강한집

황경원 초상 (작자 미상, 1793년)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황경원 초상 (작자 미상, 1793년)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작자 미상, 1793년)
생몰1709 ~ 1787
시대조선 후기
본관장수 황씨

생애 약력

황경원(黃景源, 1709~1787)은 조선 영조·정조 때의 문신이자 문장가로, 본관은 장수이고 자는 대경(大卿), 호는 강한유로(江漢遺老), 시호는 문경(文景)입니다. 1727년 생원시에 합격해 의금부도사를 지냈고, 174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이후 대사간·이조참의·대사성·승지·대사헌과 이조·예조·호조 참판을 거쳤고, 대제학을 여러 차례 맡았습니다. 형조판서·강화유수·예조판서·경기도관찰사·이조판서·의정부 좌참찬 등도 역임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정조가 규장각을 세울 때 초대 제학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정조 즉위 뒤에도 신임을 받았고, 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가 1787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학(禮學)에 정통했고, 고문(古文)을 추구한 당대 대표적 관각 문인으로 평가됩니다. 평생 명나라에 대한 의리(대명의리)를 지켰으며, 사후 정조의 명으로 문집 『강한집』이 1790년 교서관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에 의리를 지킨 인물들의 전기를 모은 「명배신전」은 숭명배청 사상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신간 소개 기사는 그를 황희의 후예로 소개합니다.

『강한집』과 「명배신전」

『강한집』은 1790년 정조의 명으로 교서관에서 펴낸 32권 15책의 금속활자본 문집입니다. 권1~2에는 시를, 이후에는 여러 산문을 실었고, 권27~32에는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에 의리를 지킨 사람들의 전기를 모은 「명배신전」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를 숭명배청 사상을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설명하며, 별도로 간행되거나 필사되어 널리 읽혔다고 합니다.

학문과 평가

정조는 황경원을 정통 고문을 쓰는 대표적 문장가로 높이 평가했다고 하며, 그는 유가적 의리를 담은 순정한 시문을 짓는 데 힘썼다고 설명됩니다. 후대 연구는 그의 시에서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명나라에 대한 감사가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분석합니다.

관직 연표

1709년 출생, 1727년 생원시 합격, 의금부도사, 1740년 증광문과 병과 급제, 이후 대사간·이조참의·대사성·승지·대사헌, 이조·예조·호조 참판을 거쳐 대제학을 여러 차례 역임했고 형조판서·강화유수·예조판서·경기도관찰사·이조판서·의정부 좌참찬을 지냈습니다. 정조 때 규장각 초대 제학, 판중추부사 임명, 1787년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정조는 그의 문집을 사후에 펴내도록 하여, 1790년 교서관에서 32권 15책의 『강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묘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료에 소재가 나오지 않음)

후손

후손과 가계 상세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수 황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황경원 자주 묻는 질문

황경원은 누구인가요?

영조·정조 때 여러 차례 대제학을 지낸 문신으로 호는 강한유로, 문집은 강한집입니다.

명배신전이란?

강한집 권27~32에 실린,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에 의리를 지킨 인물들의 전기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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