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때 지평·승지를 지내고 인조반정 뒤 유배된 문신, 황여일의 아들, 호 동명
| 생몰 | 1577 ~ 164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평해 황씨 |
황중윤(黃中允, 1577~164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해, 자는 도광(道光)입니다. 공조참의를 지낸 황여일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수일의 딸로 학봉 김성일의 질녀입니다. 1577년 5월 7일 안동 천전리 외가에서 태어나 1648년 3월 29일 일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합니다. 일곱 살 무렵부터 조부에게 글을 배워 열두세 살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1604년 사마시 초시, 1605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2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습니다. 정언·헌납·낭청·사서, 병조좌랑, 사헌부 지평을 거쳐 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에 이르렀습니다. 1618년 명나라가 요동 방어를 위해 병마 7천을 요청하자 징병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고, 1619년경 지평으로서는 무과 시험에서 관원들이 뇌물을 받은 일을 고발했습니다. 1620년에는 주문사로 표문을 가지고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바뀐 뒤에는 이이첨의 측근으로 광해군의 뜻을 따랐다는 이유로 양사의 탄핵을 받고 변방에 위리안치되었습니다. 이듬해 내지로 옮겨져 해남과 서산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했고, 1633년 특명으로 풀려나 부친의 뜻에 따라 월야동에 수월당을 짓고 은거했습니다. 1637년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쪽을 향해 통곡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산사와 두메산골을 떠돌며 살았다고 합니다. 문집으로는 1905년 간행된 『동명선생문집』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사전마다 그를 조선 중기 또는 후기의 문신으로 구분하는 차이는 있으나 생애 사실은 서로 일치합니다.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공조참의 황여일의 아들입니다.
인조반정 뒤 이이첨의 측근으로 광해군의 뜻을 따랐다는 이유로 양사의 탄핵을 받아 변방에 안치되었다고 합니다.